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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법정 복도/사진=이혜수 기자
"증거를 다 가져다드렸잖아요. 26년 선고라니 말도 안 돼요."
서울 강남역 의대생 살인사건 피해 여성의 어머니가 지난해 12월20일 서울중앙지법 법정 복도에서 흐느꼈다. 피고인 최모씨가 결박된 채 복도를 나서자 어머니는 주저 앉은 채로 "너는 살고자 하는구나"라고 외쳤다. 복도에 걸린 국민행복기금 학자금 '정숙' 안내문 옆에서 어머니는 한참을 입을 틀어막았다. 가족들은 물론 법원 방호원까지 어머니의 등을 토닥였다.
"딸이 죽은 후로 제 사업도 포기하고, 큰 딸도 직장생활을 못 하고 가족 모두 집에만 있어요."
피해자의 아버지는 1심 재판이 끝난 뒤 전하고픈 이야기가 있다며 조용히 기자를 불렀다. 그간 살아있는 것이 아 파산선고통지서 니라 지옥에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최씨가 엄중한 처벌을 받도록 죄를 입증할 증거를 찾을 때마다 딸의 죽음을 떠올려야 했다. 여느 범죄 피해자 가족처럼 마음 편히 슬퍼할 겨를도 없었던 셈이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3개월 동안 잠 한숨 안 자고 딸 휴대폰 비밀번호만 풀었다. 수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고통 속에서 자료를 찾아서 제출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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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역에서 연인 관계이던 피해자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명문대 의대생 최 모 씨(26)가 2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2024.5.14/사진=뉴스1(김명섭 기자)
증거를 모은 피해자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법정 전세자금대출 상환기간 에 증인으로 나서기도 했다. 딸이 죽기 전 최씨와 나눴던 대화 등에 비춰 최씨의 행위가 우발적이지 않았음을 증명하고자 했다. 피해자 아버지는 최씨가 사형선고를 받게 하기 위해 피해자 유족으로서 더 호소할 수 있는 제도가 있는지도 사방팔방으로 찾아다녔다.
현행법상 피해자의 유족이 가해자의 처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제도는 없다. 재판 과정에 부천직장인밴드 서 유족으로서 진술하거나 의견진술권을 통해 형사처벌에 대한 의견을 표명할 수 있을뿐이다. 범행 사실 입증을 위해 수개월 잠을 못자도 법정에서 피해자 유족은 법원 결정에 따르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는 셈이다.
1심 징역 26년이 "무겁다"는 최씨 주장에 항소심 법원은 지난 13일 "아무것도 모른 채 무자비하게 살해당한 피해자가 생에 마지막에 느꼈을 고통과 슬픔, 허망함을 헤아리기 어렵다. 여전히 유족은 고통을 호소하며 최씨의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며 30년을 선고했다.
1심보다 형량이 늘었지만 유족이 바라던 사형 선고는 아니었다. 유족들은 망연자실했다. 26살 최씨가 감옥에서 30년을 있다가 나와도 50대 나이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지 않나. 최씨가 살아갈 세상에 딸은 없다. 법정에서 아버지는 "검사님 상고하라"고 외쳤다. 법원 건물 밖으로 나온 아버지는 내내 깊은 한숨과 함께 담배를 태웠다.
다시 재판해야 한다는 아버지는 바쁜 걸음으로 법원을 떠났다. 마음놓고 슬퍼하지 못하고 다시금 분주하게 딸이 없는 세상으로 돌아갔다.
이혜수 기자 esc@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