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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의 초상 l 국어논술학원 원장 겸 강사

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대한민국은 맹모와 유생의 나라이다. 일단 지폐를 보자. 화폐 제작은 조폐공사가 맡지만, 도안 결정은 발권당국의 몫이다. 중앙은행(한국은행) mg손해보험 은 국가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인물이나 사물을 도안에 넣어 새긴다. 이황, 이이, 세종대왕, 신사임당. 참고로 이순신은 동전에 새겨져 있다. 신사임당이 화가로서 남긴 업적을 말하기도 하는데, 과연 그 업적이 진경을 통해 조선 회화의 패러다임을 바꾼 겸재 정선이나 풍속화의 지극한 경지를 보여준 단원 김홍도 혹은 혜원 신윤복에 비할 바인지 의문을 품는 사람도 많 강문수법무사 다. 이뿐만이 아니다. 부동산 관련 인터넷 카페에는 애들 교육을 위해 자가를 팔고 상급지 전세로 옮기는 게 올바른 선택인지를 묻는 글이 무시로 올라온다. 그리고 그 ‘교육’이란 결국 입시 교육을 뜻한다.
통계청과 교육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발표에 따르면, 2024년에 벌써 29조원을 웃돌았다. 게다가 인구 감소에 학자금대출 방법 따라 전국의 학생 수는 줄어들어도 오히려 전체 사교육비는 늘고 있다. 이 아이러니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나, 그 초상을 그려보았다.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국어 논술 학원을 운영하는 원장 겸 강사, 이 훈장(정사년생, 뱀띠) 되시겠다.



이 훈장이 수업할 때 쓰는 화이트 우체국 행복가득 희망적금 보드와 마커, 그리고 지우개. 이 훈장 제공


바다와 가까우니 해풍이 심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인천지하철 1호선 인천대입구역에서 내린 뒤 처음 맞은 공기는 의외로 쾌적하고 온화했다.
“멀리까지 오셨네요. 해풍은 거의 없어요. 여기가 바다 근처라고 느낄 때는 가끔 해무가 낄 때죠.”
전세자금대출 이사 말이 나온 김에 왜 하필 송도에서 학원을 운영하는지 물어보았다.
“송도를 처음부터 목표 삼아 학원을 연 것은 아니에요. 우연한 기회에 30년 서울살이를 끝내고 여기로 이사를 왔죠. 그게 벌써 9년 전이네요. 이사 와서 곧바로 학원을 연 것은 아니고, 6년쯤 되었을 때 개원했습니다. 손에 꼽힐 만큼 교육열이 강한 곳이라서 개원에 관해서는 큰 고민이 없었어요.”
여기도 서울 대치동이나 목동처럼 열기가 뜨거운지 우문을 던지자 이 훈장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럼요. 고입·대입 구분할 것 없이 무척 뜨겁죠. 초등학교나 유아 교육도 마찬가지고요. 전국적으로 유명한 국제학교도 있고, 특목고·자사고 등, 아무튼 교육국제화특구 수준이 아니고, 교육 자체의 특구인 것 같아요. 입시제도 변경 같은 이슈에 반응하는 강도는 말할 것도 없고요. 의대 열풍, 이과 쏠림 현상도 몇년째 이곳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비 오는 날에 제가 있는 1공구 학원가 주변 블록을 통과하려면, 1시간은 각오해야 할 만큼 대단하죠. 그리고 학원도 이제 들어설 데도 없을 만큼 꽉 차 있고요.”
입시가 지금은 세분되어, 대입뿐 아니라 고입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전언이었다. 그는 말끝에 헛웃음을 지어 보였는데, 15년 넘게 입시 사교육 시장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녹아내릴 것 같은 열기만큼은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듯했다. 하긴 아무리 능숙하고 잔뼈 굵은 요리사라도 뜨거운 건 뜨거운 것일 테니 말이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중원’이나 ‘중앙’을 향한 열망 탓인지, 아니면 중앙에 깔린 기반 시설 탓인지 인구도 산업도 학원도 임금이 계신 곳 가까이로 모여든다. ‘조선시대 문과급제자 연구’(이원명, 국학자료원, 2004년)에 따르면, 조선왕조 500년 동안 과거시험 문과에 합격한 이는 모두 1만4620명이고, 이 중 거주지가 확인된 사람은 1만2792명인데, 서울 거주자가 5502명으로 43%를 차지했다고 한다.
이 훈장이 처음부터 사교육 시장에 들어선 건 아니다. 스카이라고 부르는 대학 중 한곳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해서 2년가량 몸담았다가 퇴사했다. 그가 근무했던 곳이 임원을 뺀 직원 평균 연봉이 국내 상장기업 중에서 수위를 다투는 곳이라서, 어렵게 들어가놓고 왜 관두었는지 궁금해졌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도 재미없었고, 미래의 제 모습을 그려봤더니 너무 뻔한 답이 나오더라고요. 저희 부장님이 마이클 잭슨과 동갑이셨어요. 그런데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마이클 잭슨은 비록 전성기는 지났지만, 당시에도 엄청났거든요. 미래의 제 모습이 마이클 잭슨이 아니라 근엄하게 늙은 부장님과 오버랩 되니까, 다른 길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찌 보면 무난한 삶인데, 본인은 별로 탐탁지 않았나 보다. 무난함이 따분함처럼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사교육 업계가 오히려 적성에 맞을 수도 있겠다. 소위 ‘일타 강사’라고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은 보면, 연예인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한마디로 ‘끼’가 있는 것 같다. 사교육 시장의 강사로 성공하는 데 비법 같은 게 있을까?
“사교육 강사의 성공 요인은 대동소이합니다. 양질의 수업을 얼마나 전달력 있게 제공하느냐의 싸움이거든요. 강사 자체가 연예인과 비슷한 캐릭터 상품이라서, 수요자에게 얼마나 매력 있게 보이느냐가 관건이죠. 가르쳐야 할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재미있게 가르치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재미 요소가 부족하더라도 학습 동기를 효과적으로 자극할 수 있다면 역시 성공할 수 있고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던 조선시대의 서당과는 달리 현대의 사교육은 교육서비스업이다. ‘서비스’라는 말이 붙은 업종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고객 응대, 즉 고객을 상대하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 더군다나 입시는 학생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사람들이 예민하게 생각하는 일이어서 더욱 조심스러운 문제가 된다. 학생에 대한 열정과 선의를 고객이 알아주고 신뢰할 때가 가장 즐거운 순간이다. 그러나 고객 숫자가 많으면 별의별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다양한 요구에 맞추는 게 힘이 들 때도 있다. 예를 들면, 학생이 감내하기 힘든 학습량이나 난이도를 학부모가 요구하기도 한다. 학생은 고양이인데, 호랑이처럼 가르쳐달라고 하는 식이다. 이런 요구를 받으면 어떡해야 할까?
“학생 편에 서야죠. 학부모의 욕심 편이 아니라요. 객관적 시각을 전달하려 노력합니다. 입시 경쟁 말고 다른 쪽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도 있거든요.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어쨌든 교육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가지는 소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부 외에 학생의 생활과 관련해서도 학부모와 긴밀히 연락하고요. 그리고 아주 가끔이긴 합니다만, 오히려 ‘욱’하는 순간이 도리어 저로 하여금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교육에 대한 열의로 하고 있다고 자각하게 하죠. 예를 들라고요? 음, 학생이 무단결석하면 힘도 빠지고 화도 납니다. 하하.”
힘 빠지고 화도 날 때, 그리고 평소에도 컨디션은 잠과 커피로 조절한다. 커피는 강의할 때 집중력을 잃지 않게 해주는 마법의 음료이다. 아이스티, 레몬차, 녹차 외에 커피는 세 종류를 학원 복도에 비치해놓았다. 강의가 이어지는 주말에는 하루에 커피를 여섯잔씩 마신다.
대신 쉬는 날에는 일부러라도 최대한 늦잠을 잔다. 체력 소모가 많은 일이라 많은 강사가 나름대로 운동을 한다. 이 훈장도 오래도록 일을 하려면 미리 체력을 다져놓아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 강사로서 강의도 하고, 원장으로서 학원 운영도 하다 보면 금방 파김치가 되어 퇴근하고 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바로 잠에 들지 못한다. 흥분이 남았기 때문이다. 이 흥분은 커피의 각성 효과 때문이 아니다. 배우가 한동안 자기가 맡은 역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듯이, 강사 또한 한번 몰입한 강의라는 극에서 금방 빠져나올 수 없다. 강의 중간중간 학생들이 무언가 깨우쳤다는 표정을 지을 때면, 보상 호르몬인 도파민이 분비되고, 흥분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 흥분은 학생들이 모두 빠져나간 뒤, 학원이 온통 적막에 든 순간에도 가시지 않는다. 심신이 이완되기를 기다리면서, 이 훈장은 기타를 연주하기도 하고, 망원경을 제작하기 위해 독학한 3차원(3D) 설계 프로그램을 구동해보기도 한다. 참고로 그는 국내에서 회원 수가 가장 많은 천체관측 동호회의 운영자이다.
그래도 지금은 잠자리가 편하다. 학원 시간표가 인터넷에 공개되면, 등록이 금세 마감되고 대기자까지 생긴다. 그러나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이렇게 되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이 있었다. 처음 강사 일을 시작했을 때는 강의 내용 외에도 강의 기법 자체를 다듬어야 했다.
“전업 강사로 활동한 이후 7~8년차까지, 제가 한 모든 강의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녹취해서 들었어요. 어려운 개념을 제대로 설명했는지, 부적절한 언어 사용은 없었는지, 학생들의 집중력을 흐트러짐 없이 유지시켰는지 등을 항상 점검했죠. 그런 과정을 통해 저만의 틀이 완성된 것 같아요. 그리고 강의 시간만 일하는 게 아니에요. 국어와 논술 과목은 정말 많은 지문을 읽고 해설해야 하거든요. 수업에서 다룰 지문들을 미리 살펴보는 작업만 해도 꽤 긴 시간이 걸립니다.”
지금도 국어 학원을 운영하는 선배들과 종종 만나서, 더 나은 강의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사교육 시장은 정말 냉정하고, 봐주는 게 없다. 똑같은 강의가 단 한번도 없듯이, 평가 또한 매번 다르다. 그래서 더러는 전쟁터에 나간 듯 비장한 기분까지 들기도 한다. 하지만 연차가 더해질수록 느끼는 것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
“아무리 나이가 어리더라도 교실에서 강사와 호흡하는 학생은 가르치는 사람의 진심을 매우 정확하게 알아봅니다.”
*인터뷰이 요청으로 이름 등 일부 내용을 변경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최영 작가

최영 l 월급사실주의 동인. 장편소설 ‘로메리고 주식회사’, 메타픽션 ‘춘야’ ‘작은 빛’, 공저 앤솔러지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킬러 문항 킬러 킬러’ 등을 썼다. 수림문학상 수상.




최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