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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가 20주년을 맞았습니다. 초대 편집장으로서 소회가 어떤가요? 너무 좋던데요. 어렵게 탄생한 잡지가 마니아와 함께 나이 들어가면서, 또 새로운 독자가 생겨나면서 20년이 됐으니까요. 우리나라 잡지 시장에서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참 잘 버텼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아레나> 이름도 정말 좋아했어요. '고대에서 전투하던 경기장'이라는 뜻이잖아요. 어려운 시장이지만 늘 A급으로 남아주길 바랐어요. 그래서 '에이어워즈(A-Awards)' 이름 지을 때도 'A급 사람들이 모여서 A급 콘텐츠를 만들고 독자에게 A급의 삶을 누리게 한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20년 동안 <아 바다이야기프로그램 레나>는 잘해왔다고 생각하나요? 첫 책을 만들던 때를 떠올리면 무슨 생각이 드나요?제가 <아레나>를 창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를 낳았어요. 그 아이와 같은 속도로 <아레나>가 크고 있는 셈이죠. 아들이 이제 16세가 돼요. 곧 주민등록증이 나오잖아요. 비슷한 뿌듯함이 들더라고요.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부침이 많았거든요. 잡지 알라딘릴게임 업계는 변화가 심했고 시장이 계속 어려웠어요. 이전에 많은 남성지가 폐간되기도 했죠. 20년이 됐으니 이후에는 끄떡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대가 너무 빨리 변하잖아요. 그때마다 적응하려면 단계마다 변모하는 과정을 거쳐야 해요. '1만 시간의 법칙'처럼 한 가지를 10년 이상 하면 전문가가 된다고 말하잖아요. 사업하는 사람들도 늘 얘기하거든요. 5년 차에 릴게임신천지 가장 많이 망하고, 7년 차도 비슷하고, 10년 차도 쉽지 않지만 그 이상 하면 계속된다. 그래서 <아레나>는 계속 가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20년 동안 한 브랜드가 버티면 잊힐 수 없죠.
<아레나> 창간 배경도 궁금합니다. 어떤 계기로 새로운 라이선스 남성 잡지를 만들게 되었나요?고민을 많이 했어요. 콘텐츠로 성공하는 매거진을 해보고 바다이야기pc버전다운 싶었거든요. 먼저 당시 시장 파악을 해야 했죠. 회사에서 받은 미션은 '하고 싶은 매체를 제안해봐라'였어요. 한마디로 1인 TF팀이었어요. 하고 싶은 걸 그냥 할 수는 없잖아요. 성공할 수 있는 매체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 당시 눈에 확 띈 게 남성지 시장이었어요. 우리나라에 어떤 라이선스 남성지를 들여와야 하나, 국내 잡지로 남성지 시장에 뛰어들어야 하나 오리지널바다이야기 고민했죠. 그전에 라이선스·국내 여성지는 이미 활황이었어요. IMF가 2001년쯤 끝났거든요.
당시 남성지 시장은 어땠나요? IMF 전에 남성지는 <에스콰이어> 하나였어요. 이후 몇 가지 남성지가 생겨났죠. 근데 거의 다 폐간됐어요. 남아 있는 건 <에스콰이어>와 2001년에 생긴 뿐이었죠. 제가 조사한 시점은 2004년이었어요. 남성지가 이제는 여성지처럼 분화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갤러리아 이스트(EAST)관이 잘 되기 시작하던 때였어요.(웃음) 그전까지는 졸업할 때 '아르마니' 입으면 제일 비싼 옷으로 차려입었다는 느낌이었어요. 에디 슬리먼의 디올이 '남성복에 정답은 없고, 이제 남성도 취향이 있다'고 말했거든요. 그게 국내에도 확 들어온 거죠. 2004년에 편집매장 '쿤'이 생겨 해외 컬렉션 브랜드를 속속 선보였고, 라프 시몬스, 헬무트 랭, 마르지엘라, 여기에 샌프란시스코 마켓의 아메리칸, 이탈리안 트위스트 클래식까지 남성 패션에도 자기 취향을 찾아가고, 얘기하는 무리가 생겨난 거예요. 남성 명품 컬렉션도 국내 백화점에 꽤 들어왔어요. 그전까지는 많지 않았거든요. 곧 국내 남성 소비 시장이 성숙해졌다는 의미고, 광고주가 많아진다는 뜻이었죠.
기존의 국내 남성지와는 어떤 차별점을 두려고 했나요? 이전 남성지는 '너희 행커치프 꽂는 법 모르지' '식사 예절은 이런 거야'처럼 가르쳐주려는 느낌이 강했어요. 원래 초기에는 학습이죠. 취향은 그다음 단계잖아요. 이후에는 성공한 남자, '화이트칼라'라고 하죠. 그들을 대상으로 시계나 자동차 이야기하면서 '성공한 남자라면 이 정도 브랜드는 알아야지' 얘기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취향을 논할 수 있는 사람들, 패션이 옷이 아니라 문법이라고 얘기할 정도의 30대 남자가 생긴 것 같으니, 그들을 <아레나> 마니아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많은 라이선스 잡지 중에 <아레나>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영국의 <아레나>는 그런 문법에 충실했어요. 남성 종합 잡지라서 스포츠, 자동차 등 기사가 다채롭지만 스타일과 디자인 섹션을 맨 앞으로 뺀 책이었어요. 옷은 기본이고, 인테리어에도, 차에도 멋진 라이프스타일을 적용했던 책이에요. 시장조사를 하다가 연 2회 나오는 <아레나 옴므 플러스>를 먼저 알게 됐어요. 그런데 월간지 <아레나>도 너무 매력적인 거예요. <아레나>가 1986년 영국에서 발간된 잡지거든요. 닉 로건(Nick Logan)이라는 발행인이 <더 페이스(The Face)>라는 잡지를 론칭해서 성공시키고, 그다음 패션과 취향 있는 젊은 남자들을 위해 <아레나>를 만들었죠. 패션 매너뿐만 아니라 아트, 음악, 리빙 등 '나만의 취향'을 일관되게 주장한 분이었어요. 옛날인데도 요즘 사람 같았죠. 아트 디렉터도 엄청 유명했어요. 네빌 브로디(Neville Brody)라고 전반적인 디자인과 헬베티카를 이용한 타이포그래피가 혁신적이었죠.
첫 <아레나>가 나오기까지 대략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나요? 약 6개월간 본사와 메일을 주고받으며 협의했고, 2005년 초반 런던에 가서 라이선스 계약을 했어요. 계약 조건에 대해선 대부분 메일로 마쳤고, 도장만 찍으러 간 거죠. 서울문화사에는 '<아레나>라는 잡지가 있고, 이 정도면 한국 남성지 시장에서 성공할 것 같다'고 계속 프레젠테이션을 했어요. 훌륭한 회장님이 그걸 알아봐주시고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셨죠. 사실 20년 전 방문한 영국은 한국 잡지를 아예 모르더라고요. 메일로 소통했기 때문에 우리가 잡지 만드는 회사고, 한국에서 어떻게 창간하려고 하는지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대화해보니 당시에 그들이 아는 한국 사람은 딱 박지성 하나였어요.(웃음)
창간 때를 비롯해 편집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아레나>의 '추구미'는 무엇이었나요?지금은 잘 안 쓰지만 '블랙칼라 워커'였죠. 그전에 이분법적으로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가 있었어요. 우리는 대기업에 다니거나 상위 개념의 전문직에 종사하는 게 아닌, 내 취향에 맞춰서 나의 에고를 어떻게 세상에 투영해서 사느냐를 성공의 가치로 삼았어요. 남들이 '이 브랜드는 뭐야'라고 해도 내가 그 브랜드를 좋아하면 끝까지 자기 취향을 밀고 나가는 남자를 대상으로 했어요. 그래서 'BCW'라는 용어를 썼고 그들을 위한 잡지를 만들려고 했죠. 그만큼 남성 시장이 성숙했다고 판단했으니까요.
실제 <아레나>를 보는 독자는 그런 남성들이었나요? 10년 넘게 <아레나>에서 일하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이 있어요. "우리 책 보는 사람들은 옷장에서 뭐 입을지 미리 생각해두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려입고 나오지만 길거리에서 누군가 텐트 치고 정치 문제를 논하자고 하면 주저앉아 함께 이야기하는 남자다." 라이프스타일에 문법이 있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문화생활에도 문법이 생기기 마련이잖아요. 문화 안에 사람 사는 얘기가 다 들어가 있으니까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그런 남자였으면 했어요. 그래서 초기에 그렇게 사는 국내외 인물을 시리즈로 엄청 인터뷰했어요.
그중 잊을 수 없는 인터뷰는 무엇이었나요? 아주 많죠. <아레나>는 인생 자체가 스타일인 고수들과의 대화를 즐겼으니까요. '에이어워즈'를 만든 것도 그 문법을 알리고 싶어서였어요. 소설가가 패셔너블하진 않지만 막상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삶의 양식에 늘 멋이 깃들어 있는 거예요. 365일 중에 여름휴가 빼고는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오후 4시까지 한자리에 앉아서 작업을 한다든지. 그건 옷이 아니라 펜에서 나오는 정서인 거죠. 박근형 선생님도 생각나네요. 2012년 9월호 <아레나> 표지를 했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를 읊어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런데 "난 기억나는 대사 없어요. 다 잊어버려. 그래야 다음 걸 담지"라고 말씀하셨죠. 연극도 하고 영화도 하고 드라마도 하고 정말 많은 작품을 넘나드니까요. 저는 에디터들이 쓴 글이 마감에 몰려올 때 초교를 보는 영광을 누렸잖아요. 돌이켜보면 좋은 글이 참 많았죠.
지금 다시 <아레나> 편집장이 된다면 진행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나요? 독자를 만나는 행사를 많이 진행하고 싶어요. 잡지를 만들면 한편으로 헛헛한 게, 양질의 콘텐츠를 짜고 친밀하게 다가가려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어떤 독자들이 우리 책을 보는지 잘 모른다는 거예요. 우리가 많은 블랙칼라 워커 인터뷰를 했잖아요. 그 사람들이 다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유명한 셀럽도 있고, 재야의 아티스트도 있고, 신진 작가도 있으니까 하나의 커뮤니티가 될 수 있죠. <아레나>에서 일할 때 그들과 함께 일반 독자들을 만나서 소통하고, 합쳐지고, 넓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쉽죠. 너무 옛날 사람 같지만(웃음) 예전에는 대부분 독자가 누군지 알 수 있었어요. 이문세 씨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에 엽서 오듯이 독자 엽서가 막 (손을 크게 벌리며) 이만큼씩 왔어요. 잡지 안에 늘 엽서가 있었고, 독자들이 이달에 가장 좋았던 기사나 다음 달에 취재하길 바라는 기사 등을 써서 보내줬죠. 그럼 추첨해서 선물 보내주고, 모여서 여행도 같이 다니고, 행사도 하고 그랬어요.
이 외에 잡지 업계에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떤 점인가요? 디지털이 너무 익숙해졌다는 거예요. 저 역시 지면보다는 디지털 세상에 살고 있죠. 지금 운영하는 '스티커(stickher, 엄마들을 위한 문화 콘텐츠 큐레이션 미디어)'도 디지털 커뮤니티니까요. 과거 <아레나>는 '그런 세상이 온다며?' 하면서 그럼 우리는 지금 연습하고, 내공을 잘 축적했다가 확 모아서 터뜨리면 되겠다고 생각한 정도였어요. 그때는 매거진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채널이 없었고 디지털 팀이 없었으니까요. 다만 잡지가 디지털 매체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디지털 플랫폼을 타고 있는 지면 매체인 거죠.
좋은 잡지란 뭐라고 생각하나요? 잡지의 의미에 대해 자주 반추해왔어요. 질문을 의역하자면 좋은 잡지라기보다 좋은 콘텐츠가 어떤 콘텐츠인지 고민하게 돼요. 화두는 늘 같아요. 독자한테 도움이 되고 있는지, 오프라인이든 한 장의 비주얼랭귀지든 공유하고자 하는 게 잘 전달되고 있는지. 그게 좋은 콘텐츠의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사실 공유가 잘되지 않을까 봐 걱정이에요.(웃음) '내가 좋아하는 이 일을 왜 하지'와 '이걸 왜 만들지'는 맞닿아 있어요. 에디터라면 공감하겠지만 우리는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소중하잖아요. 그 좋은 걸 공유하고 싶은 거죠. 결론적으로 말하면 '전하고자 하는 게 잘 가닿으면' 그게 좋은 콘텐츠라고 생각해요.
그럼 좋은 에디터는요? 좋은 에디터는 마음 체력이 강해야 돼요. 몸 체력은 기본이고요. 저도 편집장일 때 기자들에게 수없이 말했어요. '왜 이렇게 늦냐' '스피드가 실력이다' 뭐 그런 거 있잖아요.(웃음) '좌뇌, 우뇌 다 발달한 게 에디터야'라든가. 그건 순간순간 에디터의 기량에 대해 얘기한 거고, 진짜 좋은 에디터는 마음에 근력이 있어야 해요. 에디터는 자기만의 취향이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속된 말로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요.(웃음) 내가 왜 이렇게 에디터를 하고 싶어 하지 엄청 자문했거든요. "이거 너무 좋은데, 이거 같이 누리면 좋을 텐데, 비싸지도 않은데."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지금도 그래요. 스티커 운영하면서 엄마들에게 말하고 싶은 거죠. "여기 가서 책 읽으면 진짜 좋은데, 하루에 두 시간만이라도 자기 시간 가져보면 진짜 우울하지 않을 텐데." 잡지 에디터들은 불나방처럼 전구 아래 모여 사는 거예요. 우리는 가진 게 없는데 좋은 걸 보는 직업이잖아요. 옷도, 물건도, 집도 좋은 걸 봐요. 그리고 성공한 사람들만 봐요. 공유를 하는 데 있어 '멋진 걸 봤으니 심히 행복하다' 정도의 마음 근력을 가져야죠. 후배들이 가장 많이 상담한 내용이 연애 빼고는 다 같았어요. 취재한 누구는 뭐가 됐고,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얼마큼 벌어서 남들과 비교된다거나, 이 일이 의미 없게 느껴진다거나, 프리랜서로 스타일리스트를 하는 게 나을 것 같다거나. 근데 최초에 에디터가 있잖아요. 기획을 하고, 스태프를 꾸리고, 옷매무새 하나까지 다 만지는. 좋은 것 참 많이 보지만 그게 나의 일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마음 근력이 클수록 에디터를 계속 전문가처럼 할 수 있어요.
변함없는 애정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말했잖아요. 일단 체력이 있어야 해요. 제가 <그라치아> 창간도 했어요. 그때 너무 좋았던 건 대기자들을 많이 만난 거예요. 유럽의 60세 넘은 할머니인데 에디터로 일해요. 컬렉션 다닐 때 스탠 스미스 신고, 니렝스에 셔츠 입고 수첩 들고 프런트 로에 있는 나이 든 기자들처럼 되는 게 꿈이었어요. 그 대기자들은 얼마나 축적된 게 많겠어요. 컬렉션을 30년 봤으니 초기 디자이너들의 컬렉션과 30년 후 컬렉션을 비교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아요. 그 꿈을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있어요.(웃음) 그러니까 다시 좋은 에디터에 대해 말하고 싶은데, 오래 하는 에디터가 좋은 에디터 같아요. 누군가를 인터뷰하고, 20년 후에 또 만난다면 그의 족적을 꿰뚫는 상태에서 하는 거잖아요. 그게 어떻게 나쁜 기사일 수 있겠어요. 우리나라 문화도 그만큼 숙성되고 있으니까 가끔은, 엄청 힘들 때가 많지만 비타민처럼 한 달에 한 번 너무 재밌는 기사, 혹은 좋아하는 컬렉션을 보거나 인터뷰를 하나 했는데, 좋은 문장 하나를 들어서 가슴이 두근거릴 때 그 힘으로 한 달 살고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생각해보면 그런 힘을 주는 직업은 세상에 없더라고요. CREDIT INFO
Feature Editor 김지수Fashion Guest Editor 김지수Photographer 홍준형Hair&Make-up 강현경
20년 동안 <아 바다이야기프로그램 레나>는 잘해왔다고 생각하나요? 첫 책을 만들던 때를 떠올리면 무슨 생각이 드나요?제가 <아레나>를 창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를 낳았어요. 그 아이와 같은 속도로 <아레나>가 크고 있는 셈이죠. 아들이 이제 16세가 돼요. 곧 주민등록증이 나오잖아요. 비슷한 뿌듯함이 들더라고요.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부침이 많았거든요. 잡지 알라딘릴게임 업계는 변화가 심했고 시장이 계속 어려웠어요. 이전에 많은 남성지가 폐간되기도 했죠. 20년이 됐으니 이후에는 끄떡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대가 너무 빨리 변하잖아요. 그때마다 적응하려면 단계마다 변모하는 과정을 거쳐야 해요. '1만 시간의 법칙'처럼 한 가지를 10년 이상 하면 전문가가 된다고 말하잖아요. 사업하는 사람들도 늘 얘기하거든요. 5년 차에 릴게임신천지 가장 많이 망하고, 7년 차도 비슷하고, 10년 차도 쉽지 않지만 그 이상 하면 계속된다. 그래서 <아레나>는 계속 가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20년 동안 한 브랜드가 버티면 잊힐 수 없죠.
<아레나> 창간 배경도 궁금합니다. 어떤 계기로 새로운 라이선스 남성 잡지를 만들게 되었나요?고민을 많이 했어요. 콘텐츠로 성공하는 매거진을 해보고 바다이야기pc버전다운 싶었거든요. 먼저 당시 시장 파악을 해야 했죠. 회사에서 받은 미션은 '하고 싶은 매체를 제안해봐라'였어요. 한마디로 1인 TF팀이었어요. 하고 싶은 걸 그냥 할 수는 없잖아요. 성공할 수 있는 매체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 당시 눈에 확 띈 게 남성지 시장이었어요. 우리나라에 어떤 라이선스 남성지를 들여와야 하나, 국내 잡지로 남성지 시장에 뛰어들어야 하나 오리지널바다이야기 고민했죠. 그전에 라이선스·국내 여성지는 이미 활황이었어요. IMF가 2001년쯤 끝났거든요.
당시 남성지 시장은 어땠나요? IMF 전에 남성지는 <에스콰이어> 하나였어요. 이후 몇 가지 남성지가 생겨났죠. 근데 거의 다 폐간됐어요. 남아 있는 건 <에스콰이어>와 2001년에 생긴 뿐이었죠. 제가 조사한 시점은 2004년이었어요. 남성지가 이제는 여성지처럼 분화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갤러리아 이스트(EAST)관이 잘 되기 시작하던 때였어요.(웃음) 그전까지는 졸업할 때 '아르마니' 입으면 제일 비싼 옷으로 차려입었다는 느낌이었어요. 에디 슬리먼의 디올이 '남성복에 정답은 없고, 이제 남성도 취향이 있다'고 말했거든요. 그게 국내에도 확 들어온 거죠. 2004년에 편집매장 '쿤'이 생겨 해외 컬렉션 브랜드를 속속 선보였고, 라프 시몬스, 헬무트 랭, 마르지엘라, 여기에 샌프란시스코 마켓의 아메리칸, 이탈리안 트위스트 클래식까지 남성 패션에도 자기 취향을 찾아가고, 얘기하는 무리가 생겨난 거예요. 남성 명품 컬렉션도 국내 백화점에 꽤 들어왔어요. 그전까지는 많지 않았거든요. 곧 국내 남성 소비 시장이 성숙해졌다는 의미고, 광고주가 많아진다는 뜻이었죠.
기존의 국내 남성지와는 어떤 차별점을 두려고 했나요? 이전 남성지는 '너희 행커치프 꽂는 법 모르지' '식사 예절은 이런 거야'처럼 가르쳐주려는 느낌이 강했어요. 원래 초기에는 학습이죠. 취향은 그다음 단계잖아요. 이후에는 성공한 남자, '화이트칼라'라고 하죠. 그들을 대상으로 시계나 자동차 이야기하면서 '성공한 남자라면 이 정도 브랜드는 알아야지' 얘기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취향을 논할 수 있는 사람들, 패션이 옷이 아니라 문법이라고 얘기할 정도의 30대 남자가 생긴 것 같으니, 그들을 <아레나> 마니아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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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아레나>를 보는 독자는 그런 남성들이었나요? 10년 넘게 <아레나>에서 일하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이 있어요. "우리 책 보는 사람들은 옷장에서 뭐 입을지 미리 생각해두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려입고 나오지만 길거리에서 누군가 텐트 치고 정치 문제를 논하자고 하면 주저앉아 함께 이야기하는 남자다." 라이프스타일에 문법이 있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문화생활에도 문법이 생기기 마련이잖아요. 문화 안에 사람 사는 얘기가 다 들어가 있으니까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그런 남자였으면 했어요. 그래서 초기에 그렇게 사는 국내외 인물을 시리즈로 엄청 인터뷰했어요.
그중 잊을 수 없는 인터뷰는 무엇이었나요? 아주 많죠. <아레나>는 인생 자체가 스타일인 고수들과의 대화를 즐겼으니까요. '에이어워즈'를 만든 것도 그 문법을 알리고 싶어서였어요. 소설가가 패셔너블하진 않지만 막상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삶의 양식에 늘 멋이 깃들어 있는 거예요. 365일 중에 여름휴가 빼고는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오후 4시까지 한자리에 앉아서 작업을 한다든지. 그건 옷이 아니라 펜에서 나오는 정서인 거죠. 박근형 선생님도 생각나네요. 2012년 9월호 <아레나> 표지를 했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를 읊어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런데 "난 기억나는 대사 없어요. 다 잊어버려. 그래야 다음 걸 담지"라고 말씀하셨죠. 연극도 하고 영화도 하고 드라마도 하고 정말 많은 작품을 넘나드니까요. 저는 에디터들이 쓴 글이 마감에 몰려올 때 초교를 보는 영광을 누렸잖아요. 돌이켜보면 좋은 글이 참 많았죠.
지금 다시 <아레나> 편집장이 된다면 진행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나요? 독자를 만나는 행사를 많이 진행하고 싶어요. 잡지를 만들면 한편으로 헛헛한 게, 양질의 콘텐츠를 짜고 친밀하게 다가가려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어떤 독자들이 우리 책을 보는지 잘 모른다는 거예요. 우리가 많은 블랙칼라 워커 인터뷰를 했잖아요. 그 사람들이 다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유명한 셀럽도 있고, 재야의 아티스트도 있고, 신진 작가도 있으니까 하나의 커뮤니티가 될 수 있죠. <아레나>에서 일할 때 그들과 함께 일반 독자들을 만나서 소통하고, 합쳐지고, 넓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쉽죠. 너무 옛날 사람 같지만(웃음) 예전에는 대부분 독자가 누군지 알 수 있었어요. 이문세 씨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에 엽서 오듯이 독자 엽서가 막 (손을 크게 벌리며) 이만큼씩 왔어요. 잡지 안에 늘 엽서가 있었고, 독자들이 이달에 가장 좋았던 기사나 다음 달에 취재하길 바라는 기사 등을 써서 보내줬죠. 그럼 추첨해서 선물 보내주고, 모여서 여행도 같이 다니고, 행사도 하고 그랬어요.
이 외에 잡지 업계에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떤 점인가요? 디지털이 너무 익숙해졌다는 거예요. 저 역시 지면보다는 디지털 세상에 살고 있죠. 지금 운영하는 '스티커(stickher, 엄마들을 위한 문화 콘텐츠 큐레이션 미디어)'도 디지털 커뮤니티니까요. 과거 <아레나>는 '그런 세상이 온다며?' 하면서 그럼 우리는 지금 연습하고, 내공을 잘 축적했다가 확 모아서 터뜨리면 되겠다고 생각한 정도였어요. 그때는 매거진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채널이 없었고 디지털 팀이 없었으니까요. 다만 잡지가 디지털 매체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디지털 플랫폼을 타고 있는 지면 매체인 거죠.
좋은 잡지란 뭐라고 생각하나요? 잡지의 의미에 대해 자주 반추해왔어요. 질문을 의역하자면 좋은 잡지라기보다 좋은 콘텐츠가 어떤 콘텐츠인지 고민하게 돼요. 화두는 늘 같아요. 독자한테 도움이 되고 있는지, 오프라인이든 한 장의 비주얼랭귀지든 공유하고자 하는 게 잘 전달되고 있는지. 그게 좋은 콘텐츠의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사실 공유가 잘되지 않을까 봐 걱정이에요.(웃음) '내가 좋아하는 이 일을 왜 하지'와 '이걸 왜 만들지'는 맞닿아 있어요. 에디터라면 공감하겠지만 우리는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소중하잖아요. 그 좋은 걸 공유하고 싶은 거죠. 결론적으로 말하면 '전하고자 하는 게 잘 가닿으면' 그게 좋은 콘텐츠라고 생각해요.
그럼 좋은 에디터는요? 좋은 에디터는 마음 체력이 강해야 돼요. 몸 체력은 기본이고요. 저도 편집장일 때 기자들에게 수없이 말했어요. '왜 이렇게 늦냐' '스피드가 실력이다' 뭐 그런 거 있잖아요.(웃음) '좌뇌, 우뇌 다 발달한 게 에디터야'라든가. 그건 순간순간 에디터의 기량에 대해 얘기한 거고, 진짜 좋은 에디터는 마음에 근력이 있어야 해요. 에디터는 자기만의 취향이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속된 말로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요.(웃음) 내가 왜 이렇게 에디터를 하고 싶어 하지 엄청 자문했거든요. "이거 너무 좋은데, 이거 같이 누리면 좋을 텐데, 비싸지도 않은데."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지금도 그래요. 스티커 운영하면서 엄마들에게 말하고 싶은 거죠. "여기 가서 책 읽으면 진짜 좋은데, 하루에 두 시간만이라도 자기 시간 가져보면 진짜 우울하지 않을 텐데." 잡지 에디터들은 불나방처럼 전구 아래 모여 사는 거예요. 우리는 가진 게 없는데 좋은 걸 보는 직업이잖아요. 옷도, 물건도, 집도 좋은 걸 봐요. 그리고 성공한 사람들만 봐요. 공유를 하는 데 있어 '멋진 걸 봤으니 심히 행복하다' 정도의 마음 근력을 가져야죠. 후배들이 가장 많이 상담한 내용이 연애 빼고는 다 같았어요. 취재한 누구는 뭐가 됐고,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얼마큼 벌어서 남들과 비교된다거나, 이 일이 의미 없게 느껴진다거나, 프리랜서로 스타일리스트를 하는 게 나을 것 같다거나. 근데 최초에 에디터가 있잖아요. 기획을 하고, 스태프를 꾸리고, 옷매무새 하나까지 다 만지는. 좋은 것 참 많이 보지만 그게 나의 일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마음 근력이 클수록 에디터를 계속 전문가처럼 할 수 있어요.
변함없는 애정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말했잖아요. 일단 체력이 있어야 해요. 제가 <그라치아> 창간도 했어요. 그때 너무 좋았던 건 대기자들을 많이 만난 거예요. 유럽의 60세 넘은 할머니인데 에디터로 일해요. 컬렉션 다닐 때 스탠 스미스 신고, 니렝스에 셔츠 입고 수첩 들고 프런트 로에 있는 나이 든 기자들처럼 되는 게 꿈이었어요. 그 대기자들은 얼마나 축적된 게 많겠어요. 컬렉션을 30년 봤으니 초기 디자이너들의 컬렉션과 30년 후 컬렉션을 비교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아요. 그 꿈을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있어요.(웃음) 그러니까 다시 좋은 에디터에 대해 말하고 싶은데, 오래 하는 에디터가 좋은 에디터 같아요. 누군가를 인터뷰하고, 20년 후에 또 만난다면 그의 족적을 꿰뚫는 상태에서 하는 거잖아요. 그게 어떻게 나쁜 기사일 수 있겠어요. 우리나라 문화도 그만큼 숙성되고 있으니까 가끔은, 엄청 힘들 때가 많지만 비타민처럼 한 달에 한 번 너무 재밌는 기사, 혹은 좋아하는 컬렉션을 보거나 인터뷰를 하나 했는데, 좋은 문장 하나를 들어서 가슴이 두근거릴 때 그 힘으로 한 달 살고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생각해보면 그런 힘을 주는 직업은 세상에 없더라고요. CREDIT INFO
Feature Editor 김지수Fashion Guest Editor 김지수Photographer 홍준형Hair&Make-up 강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