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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반드시 온다. 빼앗긴 들에도 오고 닭모가지를 비틀어도 온다. 산불이 온 산을 집어삼켰던 지난해에도 왔다. 검게 그을린 땅 위로 새순이 돋았고 재 위에 꽃이 피었다. 중동전쟁이 격화되고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고 환율이 1500원을 넘실대는 올해에도 왔다. 누군가 애타게 기다려도 오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아도 보란 듯이 온다. 봄이 온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꽃이 피면 알고, 바람이 달라지면 알고,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면 안다. 봄은 언제나 자신이 왔음을 스스로 알린다. 하지만, 아무도 언제 가는지 모른다.
봄은 대부분 무리 짓는 일이다. 매화 하나가 봉우리를 틔운 릴게임오션파라다이스 다고 봄이라 여기는 이들은 없다. 한 나무에 수십 개의 꽃잎이 피어야 하고, 그 나무가 다시 수백 그루가 되어야 봄이 왔다고 여긴다. 벚꽃도 흐드러지게 피어나야만 봄이라 생각하며, 사람들마저 꽃 축제장에 북적북적 모여야 봄의 한가운데 있음을 느낀다. 개나리도 마찬가지다. 길 전체가 노래져야, 담벼락 아래가 가득 차야 비로소 봄이라 부른다. 벌도 그렇다. 어 바다이야기오리지널 디선가 떼로 날아올라 꽃 사이를 오가야 봄이 왔음을 실감한다. 혼자서는 봄이 될 수 없다. 봄은 언제나 여럿이 함께일 때, 그제야 봄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허드레지게 핀 꽃이 봄이 왔음을 보여준다. /김윤지
오리지널바다이야기봄이 이렇게 무리 질 수 있는 건 공평함 때문이다. 햇빛도, 바람도, 온도도 모두 공평하다. 어느 꽃에 더 주거나, 어느 나무를 빠뜨리는 법이 없다. 봄의 햇살은 왼쪽 산자락과 오른쪽 산자락을 가리지 않고, 바람은 부잣집 화단과 길가 화분을 구별하지 않는다. 비도 마찬가지다. 어느 땅은 적셔주고 어느 땅은 건너뛰는 법이 없다. 봄비는 가진 자의 황금성릴게임사이트 땅과 가지지 못한 자의 땅을 따지지 않고 고루 내린다. 기온도 그렇다. 양지바른 곳과 응달진 곳의 차이는 있어도, 봄이 오는 방향은 모두에게 같다. 남쪽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기운은 어느 꽃을 먼저 찾아가지 않는다. 그러니 대부분 꽃은 혼자 틔워내도 무리에 안착할 수 있다. 뒤처질 이유가 없다. 못 필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피지 못한 바다이야기사이트 꽃도 이유가 있어야 한다. 공평한 봄이 왔는데도 피지 못했다면, 그건 꽃의 문제여야 한다. 봄은 할 일을 다 했으니까. 햇빛도, 바람도, 온도도 모두 제 몫을 다 했으니까. 공평함은 그렇게 피지 못한 것을 설명해야 하는 쪽으로 짐을 넘긴다.
하지만, 자리는 공평하지 않다. 어떤 나무는 햇살이 잘 드는 남향 언덕에 서고, 어떤 나무는 새 건물이 들어서며 그늘이 드리운 자리에 놓인다. 어떤 나무는 처음부터 비옥한 땅을 만나고, 어떤 나무는 모래 섞인 척박한 흙 위에 선다. 큰 나무 옆에 심어져 평생 햇빛을 나눠 가져야 하는 나무도 있고, 넓은 들판 한가운데서 아무것도 거리낄 것 없이 자라는 나무도 있다. 그 자리를 고른 것도, 피하지 못한 것도, 그 나무의 선택이 아니다. 심어지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어떤 자리인지, 무엇이 앞을 가로막을지, 땅이 제 몸을 받쳐줄 수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내려앉고, 그 자리가 전부가 된다.
그늘에 가려져 뒤늦게 핀 꽃들. /김윤지
누구도 자신이 어디에 서게 될지 알고 시작하지 않는다. 부잣집 화단인지 공사장 옆 화분인지, 햇살이 잘 드는 언덕인지 새 건물 그늘 아래인지. 알았다면 달랐을까. 고를 수 있었다면 그늘진 자리를 택할 이는 없었을 것이다. 척박한 땅을 바란 것도, 앞을 가로막을 건물을 원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선택은 처음부터 없었다. 자리를 알기 전에 이미 심어져 있고, 눈을 떠보니 그 자리가 전부다. 좋은 자리의 나무는 자신이 운이 좋다는 것을 모른 채 피어난다. 그 나무에 봄은 당연하다. 원래 이런 것이라고, 노력하면 피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늘진 자리의 나무는 불운하다는 것을 알기도 전에 이미 뒤처져 있다. 봄이 왔는데 자신만 아직 봉우리를 맺지 못했다는 것을 안다. 깨닫는 순간에는 이미 뿌리가 내려진 뒤다.
그렇기에 공평함은 잔인하다. 자연은 모두에게 같은 봄을 줬는데, 자리가 달랐다는 말은 변명처럼 들린다. 같은 햇빛 아래 있었으면서 왜 못 폈느냐고, 조건은 똑같았는데 왜 노력하지 않았느냐고. 공평한 출발이 있었다는 사실이 그 질문을 정당하게 만든다. 그늘진 자리에 서 있었다는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더 두꺼운 벽 아래 있었다는 것도, 더 척박한 땅을 버텨왔다는 것도. 보이는 것은 오직 피지 못한 꽃뿐이다. 피지 못한 꽃 앞에서 사람들은 묻는다. 왜 피지 않았느냐고. 봄은 왔는데, 햇빛은 공평했는데.
반박할 말을 찾다가 결국 자신에게 묻기 시작한다. 자리가 달랐다는 것을 자신도 잊는다. 공평한 봄 앞에서, 피지 못한 것은 온전히 자신의 탓이 된다.
만약 어떤 자리에 서게 될지 미리 알 수 없었다면, 우리는 어떤 세상을 만들었을까. 아마 우리는 가장 불리한 자리를 먼저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그 자리에 설 수도 있으니까. 피지 못한 꽃에게 왜 피지 않았느냐고 묻는 대신, 그 꽃이 서 있는 자리를 먼저 들여다봤을 것이다. 그늘을 만는 것이 무엇인지, 땅이 왜 척박해졌는지를 먼저 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심어지고 나서 눈을 떴다. 자신의 자리가 어딘지 확인한 뒤에야 규칙을 만들기 시작했다. 좋은 자리에 선 나무는 봄이 공평하다고 말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 말이 거짓은 아니다. 다만, 자리 이야기는 빠져 있다. 햇빛 좋은 자리에 선 나무는 공평함을 말하고, 그늘진 자리의 나무는 자리를 말한다. 그리고 더 많은 나무가 햇빛 좋은 쪽에 있다.
활짝 핀 벚꽃이 봄이 왔음을 보여준다. /김윤지
벚꽃이 일제히 지고 나면 사람들은 봄이 갔다고 말한다. 거리가 슬며시 초록으로 바뀐다. 사람들의 눈에는 다수가 보인다. 흐드러지게 피운 꽃들이 보이고, 일제히 지는 꽃잎이 보인다. 그 장면이 봄의 시작이 되고, 그 장면이 봄의 끝이 된다. 봄이 언제 왔는지도, 언제 가는지도 다수가 결정한다. 소수 꽃은 그 기준 안에 없다. 피었어도 봄이 아니었고, 졌어도 봄이 간 뒤의 일이 된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뉴스는 있어도, 마지막 꽃이 지는 날을 기록하는 뉴스는 없다. 축제가 끝난 거리를 걷는 사람은 있어도, 뒤늦게 피운 꽃 아래 잠시 서 있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그늘에 가렸던 나무는 다수 봄이 끝난 그제야 슬며시 꽃망울을 열기 시작한다. 알아주는 이 하나 없어도, 그래도 핀다. 피어야 할 때가 왔으니까. 자신의 봄이 왔으니까.
다수 봄이 끝났다고 모두의 봄이 끝난 것은 아니다. 봄은 첫 꽃이 필 때 시작되는 것도 아니고, 다수의 꽃이 질 때 끝나는 것도 아니다. 마지막 꽃잎 하나가 땅에 닿는 순간, 그때 비로소 봄이 끝난다. 봄은 그 나무의 꽃잎이 질 때 비로소 끝난다.
그래서 봄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김윤지 하동군 근무
필자소개☞ 얼떨결에 담담하고 소박한 이야기를 쓰게 되었지만 속은 아주 기름지답니다. 간혹 글에 누런 기름이 뜨더라도 페이퍼타월처럼 저를 감싸주시고 닦아주시길 바랍니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봄은 대부분 무리 짓는 일이다. 매화 하나가 봉우리를 틔운 릴게임오션파라다이스 다고 봄이라 여기는 이들은 없다. 한 나무에 수십 개의 꽃잎이 피어야 하고, 그 나무가 다시 수백 그루가 되어야 봄이 왔다고 여긴다. 벚꽃도 흐드러지게 피어나야만 봄이라 생각하며, 사람들마저 꽃 축제장에 북적북적 모여야 봄의 한가운데 있음을 느낀다. 개나리도 마찬가지다. 길 전체가 노래져야, 담벼락 아래가 가득 차야 비로소 봄이라 부른다. 벌도 그렇다. 어 바다이야기오리지널 디선가 떼로 날아올라 꽃 사이를 오가야 봄이 왔음을 실감한다. 혼자서는 봄이 될 수 없다. 봄은 언제나 여럿이 함께일 때, 그제야 봄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허드레지게 핀 꽃이 봄이 왔음을 보여준다. /김윤지
오리지널바다이야기봄이 이렇게 무리 질 수 있는 건 공평함 때문이다. 햇빛도, 바람도, 온도도 모두 공평하다. 어느 꽃에 더 주거나, 어느 나무를 빠뜨리는 법이 없다. 봄의 햇살은 왼쪽 산자락과 오른쪽 산자락을 가리지 않고, 바람은 부잣집 화단과 길가 화분을 구별하지 않는다. 비도 마찬가지다. 어느 땅은 적셔주고 어느 땅은 건너뛰는 법이 없다. 봄비는 가진 자의 황금성릴게임사이트 땅과 가지지 못한 자의 땅을 따지지 않고 고루 내린다. 기온도 그렇다. 양지바른 곳과 응달진 곳의 차이는 있어도, 봄이 오는 방향은 모두에게 같다. 남쪽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기운은 어느 꽃을 먼저 찾아가지 않는다. 그러니 대부분 꽃은 혼자 틔워내도 무리에 안착할 수 있다. 뒤처질 이유가 없다. 못 필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피지 못한 바다이야기사이트 꽃도 이유가 있어야 한다. 공평한 봄이 왔는데도 피지 못했다면, 그건 꽃의 문제여야 한다. 봄은 할 일을 다 했으니까. 햇빛도, 바람도, 온도도 모두 제 몫을 다 했으니까. 공평함은 그렇게 피지 못한 것을 설명해야 하는 쪽으로 짐을 넘긴다.
하지만, 자리는 공평하지 않다. 어떤 나무는 햇살이 잘 드는 남향 언덕에 서고, 어떤 나무는 새 건물이 들어서며 그늘이 드리운 자리에 놓인다. 어떤 나무는 처음부터 비옥한 땅을 만나고, 어떤 나무는 모래 섞인 척박한 흙 위에 선다. 큰 나무 옆에 심어져 평생 햇빛을 나눠 가져야 하는 나무도 있고, 넓은 들판 한가운데서 아무것도 거리낄 것 없이 자라는 나무도 있다. 그 자리를 고른 것도, 피하지 못한 것도, 그 나무의 선택이 아니다. 심어지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어떤 자리인지, 무엇이 앞을 가로막을지, 땅이 제 몸을 받쳐줄 수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내려앉고, 그 자리가 전부가 된다.
그늘에 가려져 뒤늦게 핀 꽃들. /김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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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핀 벚꽃이 봄이 왔음을 보여준다. /김윤지
벚꽃이 일제히 지고 나면 사람들은 봄이 갔다고 말한다. 거리가 슬며시 초록으로 바뀐다. 사람들의 눈에는 다수가 보인다. 흐드러지게 피운 꽃들이 보이고, 일제히 지는 꽃잎이 보인다. 그 장면이 봄의 시작이 되고, 그 장면이 봄의 끝이 된다. 봄이 언제 왔는지도, 언제 가는지도 다수가 결정한다. 소수 꽃은 그 기준 안에 없다. 피었어도 봄이 아니었고, 졌어도 봄이 간 뒤의 일이 된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뉴스는 있어도, 마지막 꽃이 지는 날을 기록하는 뉴스는 없다. 축제가 끝난 거리를 걷는 사람은 있어도, 뒤늦게 피운 꽃 아래 잠시 서 있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그늘에 가렸던 나무는 다수 봄이 끝난 그제야 슬며시 꽃망울을 열기 시작한다. 알아주는 이 하나 없어도, 그래도 핀다. 피어야 할 때가 왔으니까. 자신의 봄이 왔으니까.
다수 봄이 끝났다고 모두의 봄이 끝난 것은 아니다. 봄은 첫 꽃이 필 때 시작되는 것도 아니고, 다수의 꽃이 질 때 끝나는 것도 아니다. 마지막 꽃잎 하나가 땅에 닿는 순간, 그때 비로소 봄이 끝난다. 봄은 그 나무의 꽃잎이 질 때 비로소 끝난다.
그래서 봄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김윤지 하동군 근무
필자소개☞ 얼떨결에 담담하고 소박한 이야기를 쓰게 되었지만 속은 아주 기름지답니다. 간혹 글에 누런 기름이 뜨더라도 페이퍼타월처럼 저를 감싸주시고 닦아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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