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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엔 한 양심의 동시에 수 이상한 머뭇거렸으나2025년 6월2일 사고가 발생한 설비 내부 모습. 사고를 일으킨 원형 회전체가 그대로 밖에 노출돼 있어 사람의 몸과 닿기 쉬운 구조다. 신다은 기자


늘 먼저 와 있는 사람. 동료들은 김충현(50)씨를 그렇게 기억했다. “저도 1시간 일찍 출근하는 편인데 도착하면 벌써 와 계셨어요. 아무래도 혼자 사시다 보니 퇴근도 늘 마지막에, 불 끄고 가시고요.” 책 읽던 모습도 기억했다. “혼자 공부를 많이 하시고 자격증도 계속 따셨어요. 다들 휴대폰 보면서 쉬는데 이분은 책을 읽으셨고요. 일도 한결같이 깔끔하게 하셨어요.”
손이 야무진 사람. 친구들은 충현씨를 그렇게 기억했다. 집안에 텃밭을 가꾸고 도자기를 배웠다. 자기 손으로 난로를 제작 야간수당 시간 하고 버섯을 키우고 술을 담갔다. 친구들이 ‘대체 그런 걸 왜 하냐’고 하면 허허 웃으며 “나는 그냥 이런 게 재밌다”고 답했다.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아기자기한 취미로 달랬다.
묻지 않아도 챙기는 사람. 사촌형은 충현씨를 그렇게 기억했다. 벌초 때가 되면 늘 먼저 ‘예초기 빌려놓겠습니다’하고 전화를 걸어왔다. 언젠가 자기 몫의 작은 농기계 대출서류 정비소를 차리고 싶어했다. 주말이면 어머니를 보러 충남 보령을 오갔다.
충현씨의 삶이 갑자기 끝났다. 2025년 6월2일 오후 2시40분, 충현씨가 태안발전본부 종합정비동 1층선반기계 위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발전소에 필요한 부품을 깎다 몸이 기계 안으로 말려들어간 것이다. 회사는 “임의로 한 작업”이라며 즉각 책임을 피했다. 김용균 해약환급금 씨 사망사고 이후 6년,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또 사람이 숨졌다.



2025년 6월3일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의 2차 하청 노동자 김충현씨의 빈소에서 충현씨의 어머니가 영정을 얼굴에 대어보며 울고 있다. 신다은 기자


직장인의 하루회전체 뱅글뱅글 도는데…일상적으로 방치된 위험
충현씨 사고는 용균씨 사고와 닮은 점이 많다. 신체가 기계에 말려들어갈 위험에 일상적으로 노출됐다. 용균씨가 컨베이어 벨트 가까이 몸을 집어넣어야만 정비할 수 있었다면, 충현씨는 정밀 부품을 만들기 위해 공작기계 가까이 밀착해야 했다. 기계의 끼임 위험을 그대로 둔 채 ‘옷매무새 정 근로기준법주5일제 돈’과 같은 안전수칙만으론 사고를 막을 수 없었다.둘 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하청이거나(김용균) 재하청이어서(김충현) 위험을 보고할 체계가 없다시피했다.
죽음의 구조는 어떻게 반복되는가. 왜 한 사람의 죽음으로 어렵게 이룬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시대에 또 다른 사람이 죽는가. 한겨레21은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지회와 함께 태안화력발전 사고 현장을 찾았다. 안전 관련 자료를 두루 분석했고 장례식장에서 동료와 친구들의 증언을 모았다. 그 결과, 위험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충현씨의 작업 환경과 그 위험을 시야 밖으로 밀어낸 불안정 고용 구조가 드러났다.
충현씨는 공장에 필요한 각종 부품을 가공해 만드는 사람(‘선반사’)이다. 양쪽 고정대에 길다란 금속 원재료를 고정한 뒤 빠르게 회전하는 날(회전체)로 깎아내는 식이다. 노동자는 기계 가까이 붙어 작업물을 관찰하고 부족한 부분은 공구로 깎는다. 기계의 회전 속도는 자유자재. 느릴 땐 1분에 30번, 빠를 땐 1400번까지 돈다. 사고 당일엔 1분에 780번을 돌았다.
재봉틀에 옷감을 넣을 때 몸이 밀착되듯, 선반기계도 정밀 나사를 만들다 보면 몸이 자연스럽게 밀착된다. 그러나 빠르게 도는 회전체엔 사람이 가까이 가면 안 된다. 신체나 옷이 말려들어갈 위험이 있어서다. 이 때문에 컴퓨터로 구동하는 신식 기계(CNC선반)는 아예 기계 전체에 뚜껑을 씌워 사람의 접근을 구조적으로 차단한다. 반면 ‘범용 선반’이라 불리는 구식 기계는 회전축이 그대로 노출돼 노동자 신체와 접촉될 위험이 크다.사고 기계도 범용 선반이었다. 그나마 회전축을 덮개로 가리고 아크릴판도 씌워야 접촉 위험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사고 설비엔 아크릴판이 없었다. 충현씨와 회전체 사이를 막는 것은 철제 덮개 뿐이다.



사고 설비가 아닌 ‘범용 선반’ 기계. 아크릴판으로 작업 공간을 차단했다. 신다은 기자





신식 CNC선반은 회전체가 내부 공간 안에 들어가 있다. 노동자가 문을 닫고 구동할 수 있어 회전체 끼임 위험이 원칙적으로 차단된다. 독자 제공


사고 당시 충현씨는 금속 재질의 봉을 깎던 중이었다. 동그란 원형이 아니라 타원형 봉이어서, 선반기계의 고정대에 딱 맞물리지 않았던 듯하다. 이 때문에 사고 당시 회전체가 충현씨 예상보다 큰 반경으로 돌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작업을 하던 충현씨의 왼팔이 순식간에 회전체 안으로 말려 들어갔다. 곧이어 충현씨의 몸이 들어올려져 기계 위로 쓰러졌다. 이상한 소리를 듣고 현장에 달려온 동료들이 그를 발견했다. 오후 2시45분, 현장에 구급대가 도착했고 오후 3시3분께 그를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충현씨는 끝내 숨졌다.
만성적으로 노출된 위험에도 안전수칙은 형편없었다.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선반 작업안전’ 가이드를 보면 △회전체에 작업복이 말려들지 않도록 복장·소매를 단정히 함 △선반 주변(발판, 베드 등)에 칩·공구 등 정리정돈 확인 △회전이 완전히 멈춘 후 가공물을 제거 등이 전부다. 회전축이 노출된 기계는 그대로 두고서, 만드는 사람이 스스로 조심하라는 것이다.
충현씨는 이 수칙을 알고 있었다. 그가 사고 이틀 전 작성한 안전 체크리스트(‘작업 전 안전회의 일지’)를 보면 ‘면장갑 착용금지’, ‘보안경 착용’, ‘칩 제거 도구 이용’ 등에 모두 체크 표시했다. 안전수칙을 다 알았지만 사고는 피하지 못했다.



김충현씨가 사고 발생 며칠 전 ‘작업 전 안전회의’에 체크한 안전 점검 내역. 신다은 기자


비상정지버튼 눌러줄 동료 없었다
사고 당시 충현씨는 혼자였다. 그의 왼팔이 기계에 말려들어갈 때 누군가 기계의 비상정지페달만 밟았어도 충현씨는 살았을 터였다. 그러나 현장엔 아무도 없었다. 근무 인원을 보면 2인1조는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다. 충현씨는 한전KPS 내의 선반기계 여러 대를 혼자 돌리는 유일한 선반사였다. “선반 일은 2인1조도 아니고요. 간혹 일 맡긴 사람이 같이 있을 때도 있는데, 그러더라도 비상정지버튼이 어딨는지 알 턱이 없죠.” 동료 ㄷ씨가 말했다.
발전 설비의 경우 형식적인 절차일지언정 최소한 한전 케이피에스(KPS)와 본사 안전관리자도 현장에 함께 있다. 하지만 충현씨는 홀로 있었다. “(생산에 직접 관여하는) 발전 설비가 아니니까, 정비동은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라는 게그가 시야에서 멀어진 이유(동료들 설명)다. 그는 작업자 팀끼리 아침마다 안전을 점검하는 회의(‘툴박스미팅’·TBM)도 혼자서 했다.
2025년 현재 한전KPS 하청업체의 총 유지보수인력은 38명이다. 이 인원으로 발전소 1~4호기와 7~10호기 전기·기계를 두루 손 본다. 통상적으로 하는 정비활동(경상정비)과 기계를 멈춰놓고 총체적으로 점검하는 특별정비활동(계획예방정비)를 모두 해야 한다.
2차 하청 일자리, 위험 말하기 어려운 구조
원청 편의를 위해 마련된 다단계 하청 구조도 위험 소통을 막았다. 충현씨는 서부발전의 2차 하청 노동자였다. 원청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본부가 발전설비의 유지·보수 업무를 1차 하청업체 한전KPS에 외주화했다. 한전KPS는 받은 일감을 2차 하청업체(‘삼신’과 ‘한국파워O&M’)에 또다시 외주화했다.
불리한 업무 구조는 노동자들을 취약한 위치로 밀어넣었다. “하청 사장은 1년에 한 번 얼굴 볼까말까니까 아예 말 붙일 일이 없고요. 현장에서 원청 관리자들 만나더라도 대부분 안전 쪽이 아니예요. 위험하다고 말하면 ‘그냥 몸 돌려서 작업해’라거나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되려 물어보니까.자칫 ‘일하기 싫다’는 느낌을 줬다가는 ‘쟤는 현장 못 오게 해’라는 말 들을 수도 있고요.” 정철희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 태안분회장의 말이다.
만성적 고용 불안은 자유로운 소통을 막는다. 충현씨도 2019년께 현 직장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 새로 온 2차 하청 사장의 연봉 삭감에 반발했다가 고용승계에서 제외됐다.사장은 대체 인력을 바로 뽑았다. 안 그래도 고용불안에 시달리던 충현씨는 이 일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제가 충현이한테 그냥 일 그만두고 자영업하라고, 왜 기술력 갖고 그런 대접 받냐고 뭐라고 했죠. 매년 재계약 때마다 불안해 했는데 일까지 끊기고서 많이 충격 받고 실망했던 것 같아요.” 충현씨의 친구 ㄹ씨가 말했다.
이 사건은 동료들도 기억한다. 노조가 결성될 만큼 큰 사건이었다. “사장이 1년에 한 번씩 바뀌다 보니 분쟁도 끊이질 않았어요. 그때도 새로 온 사장이 임금을 대폭 삭감하려고 했는데요. 충현씨가 ‘그 돈 받고는 일 못 한다’고 버텼더니 바로 사람을 구해 버린 거죠. (충현씨는) 그 다음해 임금 수십만원을 깎고서야 겨우 복귀했어요.” 정 분회장이 말했다.
원청도 1차 하청도 노동자 관리 책임을 벗기 위해 법인을 끝없이 분리한다. 그러나 하청 노동의 이동 경로를 되짚어 올라가면 최종 수혜자는 결국 원청이다. 예를 들어 충현씨가 만든 물건 중 2차 하청업체가 요청한 물건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1차 하청업체인 한전KPS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 “여기서 만드는 물품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물건이 아니예요. 우리는 대부분 기성품을 쓰거든요. 선반사에게 맡기는 특수 부품은 다 한전KPS가 필요로 해서 만드는 물건이죠.” 그리고 한전KPS는 그 부품과 노동을 서부발전 설비의 유지·보수에 쓴다. 서류상 구분과 무관하게 충현씨의 노동으로 설비를 매끄럽게 돌리는 주체는 결국 서부발전이었다.
사고 나니 재해자 탓 “임의로 작업”
그런데도 회사는 사고가 나자 충현씨를 탓했다. 원청 서부발전은 사고에 대해 “기계공작실 내 선반 주변을 임의 주변 정리 중 끼어 의식이 없음”이라고 허성무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회신했다. 사고 작업은 김씨가 ‘임의’로 한 일로, 회사가 시킨 일이 아니라는 취지다.하청인 한전KPS는 ‘사고로 인한 생산 타격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발전설비와 관련없는 공작기계에서 사고발생”, “파급피해·영향 없음”이라고 허 의원실에 회신한 것이다. 2018년 12월 원·하청이 김용균씨를 향해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비난한 것과 똑닮았다.



2025년 6월3일 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그림 노트. 김충현씨가 그리던 것으로 추정된다. 발전비정규직지회 제공


그러나 충현씨는 베테랑이다.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나사 하나 만들어 달래도 ‘작업의뢰서’ 없이는 일을 받지 않았다.”(동료 ㅁ씨) 직원들이 급하다며 구두로 먼저 작업 요청을 하면 ‘접수대장’이라도 꼭 쓰라고 요구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나사 하나 만드는 데도 KPS의 금속 원료를 써야 하는데 누가 허락도 없이 임의로 일하겠어요?” ㅁ씨가 말했다.
사고 현장에선 충현씨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설계도와 부러진 밸브 봉이 발견됐다. 누군가 밸브 봉을 새로 만들어 달라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 노동부는 현장에서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충현씨의 구체적인 작업 배경을 확인 중이다. 원청이 ‘임의’라고 부른 작업 현장엔 여러 업무 지시의 흔적이 있었다.
태안(충남)=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