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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어두운 그림자가 다시 글로벌 경제를 덮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의 공급시설을 정밀 타격한 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은 극도로 고조되고 있다. 이란 의회는 해협 봉쇄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보복 시나리오가 잇따르면서 국제 유가는 열흘 만 15% 이상 급등했다. 한국 정부는 비상상황실을 가동해 대응에 나섰지만, 산업계는 원유 수급 차질과 물류 대란, 공급망 붕괴라는 '삼중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트럼프의 협상전은 이미 시작됐다. 이란의 반격은 시간문제다. 지금 한국 산업이 마주한 현실과 과제는 무엇일까. △산업계 영향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 △이란의 대응과 한국의 대안까지, 3가지 쟁점을 짚어본다. 경춘선 청량리
①해협 리스크 '충격의 파도'



2025년 6월 국제유가 변동./그래픽=비즈워치


시장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23일 장중 브렌트유는 배럴당 81.4달러, WTI는 76달러를 넘어섰다. 이스라엘-이란 아파트담보대출금리비교 분쟁이 본격화된 지난 12일 기준 브렌트유는 69.36달러, WTI는 68.04달러였다. 열흘 만에 각각 17.4%, 13.1% 급등한 셈이다. 중동발 리스크가 유가의 흐름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 시내 주유소 휘발유 가격도 리터당 1730원을 넘기며 7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유가 급등이 본격화되면 산업계 전반에 제1금융권신용대출 연쇄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유업계는 단기 수혜보다 장기 리스크에 주목하고 있다. 재고 평가 이익이 일시적으로 발생할 수는 있으나, 원유 수급 차질이 현실화되면 그 충격이 더 크다는 판단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70% 이상이 중동산이고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며 " 법인회생신청서 해협이 차단되면 수급 자체가 흔들리고 유가 급등은 소비자 물가와 산업 생산비 전반에 연쇄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정부가 약 200일분의 비축유를 확보하고 있긴 하지만 이는 단기 대응에 불과하다"며 "장기 봉쇄 국면에선 근본적인 대응이 어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석유화학 업계는 정유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국 kt 통신비 내 주요 석화기업은 나프타를 원료로 쓰는 NCC(나프타분해시설) 기반 구조여서 국제 유가와 나프타 가격의 등락이 마진을 좌우한다.
석화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글로벌 공급 과잉 국면이라 제품 가격을 올리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럴 때 유가만 오르면 원가는 치솟고 수익은 줄어드는 '역마진'이 심화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여기에 물류 차질과 글로벌 경기 둔화까지 겹치면 사실상 삼중고"라며 "현금흐름이 막히는 기업도 나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파는 제조업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전자·철강·조선 등 원유와 해상운송에 의존하는 산업은 △원가 급등 △납기 지연 △환율 변동성이라는 삼중 압박에 직면했다.
특히 공습 직후 불과 며칠 만에 해상 운임이 85% 넘게 치솟으면서 글로벌 공급망을 활용하는 수출 제조업체들의 비용 부담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부품 수입 차질은 납기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지고, 이는 글로벌 바이어와의 거래 관계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②선제 타격은 전략…'힘의 협상' 노린 포석



이란-이스라엘-미국 군사행동 타임라인./그래픽=비즈워치


트럼프의 선택은 돌발이 아니었다. 협상 테이블을 제시하는 동시에 군사 행동을 감행한 이번 결정은 오히려 예고된 수순에 가깝다. "2주 안에 태도를 바꾸라"는 유예는 형식일 뿐, 이미 행동 계획은 준비돼 있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박상기 한국협상학회 부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제안 직전부터 이미 타격 결심을 굳혔고, 시간 여유를 언급한 것은 상대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위한 양동작전에 불과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트럼프는 항상 강한 포지션에서 협상에 들어가려는 스타일"이라며 "상대가 핵무기로 위협하려 들기 전 그 수단부터 부숴버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바마 정부 시절 이란 핵합의*의 진정성과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정보력에 대한 회의도 트럼프의 결단 배경으로 지목된다. 박 부회장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란의 핵무기 폐기를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일부를 숨긴 채 '없던 일'로 공표한 것"이라며 "트럼프는 그 거짓을 바로잡고 이란이 여전히 핵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던진 셈"이라고 말했다.

* 지난 2015년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과의 핵합의를 주도했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중국·러시아 등 주요 6개국(P5+1)이 참여한 이 합의서 이란은 고농축 우라늄 생산과 플루토늄 추출을 중단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수용하는 대신 미국과 서방은 이란에 대한 경제·금융 제재를 해제키로 했다. 하지만 핵개발 능력 자체를 완전히 없앤 것은 아니어서 "전쟁을 피한 실용적 타협"이라는 평가와 "최악의 협상"이라는 비판이 엇갈렸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이 합의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며 사실상 파기시켰다.

트럼프의 목표가 이란 핵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니라는 해석도 나온다. 박 부회장은 "숨겨진 핵을 전부 찾아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트럼프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핵심은 힘을 과시하고 향후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전략적 계산"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을 "군사 행동을 통해 협상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전형적인 매파 전략"으로 규정했다. "지금의 미국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푸는 국가가 아니다. 먼저 타격을 가해 상대의 수단을 무력화시킨 뒤 협상력을 확보하는 방식"이라는 설명이다. 박 부회장은 "이란의 반격 전에 선제 타격에 나선 것도 미국을 '공격 수단을 제거한 강자'의 위치에 올려놓기 위한 포석"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더욱 과감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 부회장은 "트럼프는 첫 임기 때도 행정명령을 쏟아냈지만 앞으로의 1년은 그보다 더 강경하게 나올 가능성이 높다"며 "중국 압박·통상정책·군사적 시위까지 전방위적으로 무리수를 둘 수 있"고 내다봤다.
그는 "이 같은 압축 전략은 내부적으로는 민생 불안으로 직결될 수 있다"며 "유가 급등·물가 불안·중동계 미국인 사회의 반발이 이어질 경우 정치적 역풍이 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강한 액션은 초반엔 효과가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반대 세력을 키우는 요인이 된다"며 "이것이 조기 레임덕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흐름"이라고 덧붙였다.
③"나포 한 척이면 충분"…'사실상 봉쇄'가 몰고 올 파장



/그래픽=비즈워치


불확실성의 핵심은 '이란의 다음 수'다. 공습 이후 반격을 예고한 이란은 최근 의회를 통해 호르무즈 해협 봉쇄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정부 차원의 '국가 안보 결단'도 임박한 상황이다. 정면 충돌보다는 해상 통제를 앞세운 전략적 대응에 무게가 실린다.
성일광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는 "공식 봉쇄 선언 없이도 지나가는 선박을 단 한 척만 나포하면 다른 선박들은 스스로 항로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며 "그 자체로 시장은 사실상의 봉쇄 상태로 인식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은 자국이 아닌 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를 활용해 미군 기지를 간접적으로 공격하거나 후티 반군을 동원해 홍해 항로를 교란하는 방식으로 미국을 압박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동 전역을 무대로 한 '비정규전' 양상의 충돌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도 산업 전반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비상 대응에 돌입했다. 이날 산업통상자원부는 중동 비상상황실을 확대 가동하고, 에너지·수출·물류 분야별로 긴급 대응반을 편성해 시나리오별 영향 점검에 들어갔다. 최남호 산업부 2차관은 "현재까지 수급에는 큰 차질이 없지만 상황 악화를 대비해 단계별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업계와 전문가들은 "사후 대응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트리거가 당겨지기 전 이미 시장이 반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군사적 충돌 여부도 중요하지만, 시장이 더 민감하게 보는 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할 수 있느냐'는 점"이라며 "이 같은 불확실성만으로도 시장은 이미 해협 봉쇄를 가정한 채 가격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은 유가 급등에 대비한 원가 분산 전략을 마련해야 하고, 정부는 외교·금융·물류 등 전방위 시스템에 내진 설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란과 직접 충돌하지 않더라도 해상 교란만으로 글로벌 공급망은 충분히 흔들릴 수 있다"며 "한국은 외교 채널 다변화·전략 비축 확대·통화스와프 체결 등 경제안보망을 선제적으로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강민경 (klk707@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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