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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최대한 심통난 안 흔들거리는 혜주는 연신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책 읽는 시민들 뒤로 문화일보가 선정한 ‘2025년 올해의 책’이 진열돼 있다. 곽성호 기자
인공지능(AI)이 일상의 문턱을 넘은 한 해였다. 창작을 넘어 출판의 영역까지 AI가 넘보는 시대에, 책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올 한 해 북리뷰 지면을 통해 소개된 책들 가운데 북리뷰팀 기자들이 엄선한 10권의 책은 그 질문에 대한 여러 갈래의 응답이다. 알파고 이후 바둑계의 변화를 짚어내며 인류의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책부터, AI는 미처 시도할 수 없는 방식으로 1980년대 ‘극장도시’서울을 읽어 모바일릴게임 낸 사회학서, 미술계 내부로 잠입한 르포르타주, 경험이 소거되는 시대의 감각을 복원하려는 인문서까지. 효율과 계산으로는 가닿을 수 없는 기억과 감정, 권력과 언어의 문제가 책에서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결국 문학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듯, 올해 가장 눈에 띈 한국문학도 포함됐다. 변화의 속도 앞에서 잠시 멈춰 ‘지금, 여기’를 사유하기 위한 좌표이자, 바다이야기고래출현 다가올 다음 국면을 준비하게 하는 사유의 출발점이 될 ‘올해의 책’을 소개한다.
자극 기억해 더 나은 선택… 식물도 ‘지능’ 가진 존재다■ 빛을 먹는 존재들조이 슐랭거 지음│생각의힘
‘식물지능(Plant Intelligent)’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책. 책은 뇌가 없는 황금성릴게임 식물에도 지능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다고 주장한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식물은 감각도 판단 능력도 없는 존재로 여겨졌다. 1880년 찰스 다윈은 식물의 어린뿌리 말단이 “하등 동물의 뇌처럼 작동한다”는 ‘뿌리-뇌’ 가설을 제시했지만 학계의 맹렬한 비판에 부딪혔다. 그러나 이후 생리학·신경생물학·분자생물학의 발전으로 과거 당연하게 여기던 명제가 흔들리기 게임몰릴게임 시작했다. 1970년대 들어 식물이 뿌리로 수분을 ‘탐지’하고 잎으로 빛의 각도와 세기를 ‘계산’하며, 자극의 빈도를 ‘기억’하고 이웃 식물의 화학 신호를 ‘해석’한다는 연구들이 등장한 것.
예를 들어 식물에는 인간의 신경계와 유사한 이온 통로와 신경전달물질이 있다. 이들은 자극 부위에서 몸 전체로 전기신호를 보내고 면역체계를 활성화하는 릴게임가입머니 역할을 한다. 책에는 식물이 기억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도 등장한다. 나사 포이소니아나는 수분 매개자가 찾아오는 빈도를 기억하고, 다시 나타날 때를 예측해 꽃가루를 내놓는다. 식물이 자신이 감각한 바를 바탕으로 더 나은 것을 선택한다는 의미다.
예술 둘러싼 허세와 욕망… ‘현실적인’ 미술계 입문서■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비앙카 보스커 지음│알에이치코리아
저널리스트 작가의 책에는 일종의 신뢰가 생긴다. 직업적 호기심을 바탕으로 누구보다 치열하게 현장 깊숙이 들어가 독자의 시야를 넓혀주기 때문이다. 올해 다양한 저널리스트의 책이 출간됐지만 미국 문화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뉴욕 예술계에 직접 몸을 던져 쓴 이 책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브루클린의 작은 갤러리 말단 직원으로 시작해 신진 예술가의 작업 조수까지 예술계의 가장 낮은 층위에서 가장 화려한 무대까지 가로지른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예술을 둘러싼 돈과 권력, 허세와 욕망이다. 이 책은 예술을 신비화하기보다, 예술이 어떻게 유통되고 소비되는지를 솔직하게 보여준다.
동시에 저자는 냉소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가 만난 예술가들과 내부자들의 태도는 ‘왜 예술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예술을 사랑하지만 미술계의 언어가 낯설었던 독자에게, 이 책은 가장 현실적인 입문서다. 저자가 조수로 들어간 예술가가 최근 국내에서 첫 개인전을 연 줄리 커티스라는 점이 재미를 더한다.
88 올림픽은 ‘연출된 사건’… 서울은 어떤 가면 썼었나■ 1988 서울, 극장도시의 탄생박해남 지음│휴머니스트
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는 일, 책의 역할 중 하나다. 1988년 올림픽이 열렸던 서울을 ‘극장도시’로 바라본 이 책이 바로 그렇다. 형제복지원과 장위동 등 다양한 공간을 중심으로 한국사회를 들여다본 사회학자 박해남의 저서로, 특정 사건이 아닌 한 도시의 변화를 통해 시대를 돌아보게 한다.
1980년대 서울은 국제사회에서 지위 상승을 노리던 거대한 무대였다. 이를 위해 박정희 정권에서 전두환 정권으로 이어지며 ‘정비된 도시’와 ‘문화 국민’을 만들기 위한 시도는 멈추지 않았다. 지금의 탑골공원과 종묘광장공원은 부랑자들의 터전이자 성매매 집결지였던 공간을 재정비한 결과다. 현재까지 유지되는 엘리트 체육시스템 역시 이 시기 설계됐다.
이 책의 흥미로운 지점은 올림픽을 국가적 성취가 아니라 ‘연출된 사건’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도시를 하나의 무대로 읽어내는 저자의 시선은 오늘날 재개발과 도시의 브랜드화와 겹쳐진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되묻는 점에서 올해의 책으로 손색이 없다.
모시던 신령이 떠난 무당… 진짜·가짜의 경계는 뭔가■ 혼모노성해나 지음│창비
올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한국 문학 붐(Boom)’을 상징하는 책이라면 단연 ‘혼모노’를 꼽게 된다. 젊은 독자들의 ‘텍스트힙’ 열기가 성해나와 같은 젊은 작가들의 강렬하고도 예리한 색채에 힘을 더해준 결과다. 교보문고와 예스24가 발표한 2025년 결산 자료에 따르면, ‘혼모노’는 연간 종합 베스트셀러에서 각각 4위와 3위를 차지했다.
‘혼모노’라는 소설집 제목은 ‘진짜’를 뜻하는 일본어 단어, ‘本物(ほんもの)’에서 왔다. 표제작에서 30년 차 박수무당인 ‘문수’는 자신이 신령으로 모시고 있던 ‘장수할멈’이 스무 살 남짓의 ‘신애기’에게 옮겨간 것을 목도한다. 신령 없는 무당이 되어버린 문수는 어떻게든 진짜처럼 보이려 애쓰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주변의 조소다.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겨진 다음에야 비로소 ‘모든 것에서 놓여’ 살을 풀고 명을 빌게 된 문수는 어떤 쪽이 진짜인지, 진짜와 가짜라는 게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이기나 한 건지 독자들에게 묻는다.
책은 문수라는 개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세대 갈등이나 전통과 현대의 대립 등 사회적 쟁점에까지 질문을 던진다.
‘혐오 정치’ 반복되는 세계… 獨 장악한 나치 통해 분석■ 나치 마인드로런스 리스 지음│책과함께
올해 출간된 벽돌책 중에서도 눈길이 가는 책이다. 소수당에 불과했던 나치는 어떻게 독일을 장악했는가. 교양 있는 시민들은 왜 그 선전에 동조했는가. 30여 년간 나치를 집요하게 추적해온 저자는 역사와 권위와 복종, 집단심리와 뇌 연구 등 심리학의 최신 학문 성과를 결합해 나치의 부상과 몰락을 다시 들여다본다.
이 책은 나치의 범죄를 단순한 역사적 사건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음모론 퍼뜨리기, 집단 갈라치기, 청년 타락시키기, 두려움 키우기 등 히틀러와 나치가 결정적 순간마다 사용한 전략 12가지를 통해 민주주의가 내부에서 어떻게 붕괴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을 지금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혐오와 분열을 자산으로 삼는 정치가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유럽의 극우 정당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가자지구의 집단 학살까지. 나치즘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꿔 살아남았다. 과연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 질문이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래 남는다.
‘자연의 법칙’ 통념 뒤집어… 모성애 인간본능에도 의문■ 자연스럽다는 말이수지 지음│사이언스북스
좋은 책의 미덕은 당연하게 받아들인 사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이 그렇다. 저자는 ‘자연스럽다’는 수식어가 가지고 있는 통념을 깨기 위해 그 어떤 단어보다 순수하고 중립적으로 느껴지는 ‘자연’이라는 단어 속에 얼마나 많은 가치 판단이 담겨 있는지 역설한다.
동성애나 피임 등을 반대하는 근거는 주로 ‘자연의 법칙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 비롯된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 기술로 많은 한계를 극복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통용되는 논리다. 그러나 저자는 동성애 성향을 보이는 수많은 곤충들과 자연에서 흔히 벌어지는 영아 살해 등의 사례를 통해 이를 반박한다. 나아가 ‘인공’적인 백신 등 여러 생존 수단이야말로 인간다운 자연임을 논증한다.
그런가 하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본능으로 여겨졌던 모성애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인류의 출산율이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모성보다는 협동 육아 덕분이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다소 뻔한 말이 돼 버렸지만 여성성과 남성성 역시 생물학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 결국 우리가 바라본 자연은 사회적·문화적 산물이었다. 책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자연의 비밀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알파고가 부른 바둑계 변화… AI 앞 예술·스포츠에 경고■ 먼저 온 미래장강명 지음│동아시아
“나는 바둑계에 미래가 먼저 왔다고 생각한다.”
2016년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와 프로 기사 이세돌 간의 대국은 바둑계를 한순간에 뒤바꿔버렸다. 이세돌 9단이 1승 4패로 AI에 무너지는 걸 지켜본 바둑계는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뒤로한 채, AI에 다시 바둑을 배워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피도 눈물도 없는 AI 앞에 기사의 ‘기풍’이라는 말은 사라진 지 오래고, AI의 교육을 받은 기사들이 세계대회를 석권하기 시작했다. 바둑을 공부하는 방법, 바둑을 관전하는 문화, 바둑을 통해 추구하던 가치 등 모든 것이 달라졌다.
저자가 전·현직 프로기사 30명과 바둑 전문가 6명을 인터뷰해 이를 생생하게 그려낸 책은 바둑계 변화 과정을 담은 르포르타주이자, 곧 같은 미래를 맞게 될 다른 예술·스포츠 분야에 대한 경고다. 압도적인 실력의 AI가 일상이 될 때, AI는 전문가의 권위와 자부심을 부수는 것을 넘어 일·예술의 정의와 우리가 추구하던 가치 자체를 재정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인 저자는 소설 쓰는 AI가 매일 위대한 장편을 288편씩 내놓을 때 소설가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해서도 곱씹는다.
‘지루함’마저 소멸된 시대… 무엇을 지켜야 할 것인가■ 경험의 멸종크리스틴 로젠 지음│어크로스
현대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경험의 부재’다. 미국 문화 역사학자인 저자는 기술이 인간의 감각을 확장해온 지난 역사와 달리, 오늘날의 디지털 기술은 오히려 직접 경험을 대체하고 있다고 말한다. 인공지능(AI)과 SNS, 온라인 플랫폼으로 인해 신체성의 의미가 희미해진 지금 이 문제의식은 더욱 절실하다.
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지루함’의 소멸이다. 지루함은 쓸모없는 감정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와 다시 접속하는 통로다. 오래 기다리던 약속의 설렘, 줄을 서서 들어간 공연장의 몰입, 목적 없는 산책에서 떠오르는 공상은 효율로 환산할 수 없는 경험이다.
실제로 신경과학자들은 ‘딴생각’을 인간 고유의 창의성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자기인식, 창의적 숙고, 기억 강화와 미래지향적 사고 같은 것들이 여기서 피어난 가치다. 아날로그에 대한 그리움을 바탕으로 한 필사 열풍이 다시 등장하는 지금, 이 책은 기술 비판을 넘어 ‘무엇을 지켜야 할 것인가’를 묻는 차분한 성찰로 읽힌다.
좌절할 수밖에 없는 이대남… ‘매노스피어’서 벗어나려면■ 젊은 남성은 왜 분노하는가사이먼 제임스 코플런드 지음│바다출판사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화두에 오른 ‘이대남’들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을 내놓은 책이다. 이들은 주로 극우로 호명되며, 좌절감과 페미니즘에 대한 적대감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나아가 일종의 사회문제로까지 치부되기도 한다.
사회학 연구원인 저자는 분노하는 젊은 남성들이 모이는 온라인 공간을 ‘매노스피어’(Manosphere·남성계)라고 지칭하고, 이들의 탄생 배경을 신자유주의적 구조와 연관 지어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한다. 전통적 가부장 신화가 무너지고, 경제적 안정성마저 무너진 현실에서 이들의 분노가 여성을 향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이들을 극단으로 몰아 비난하고 방치해서는 아무것도 해결될 수 없다. 왜곡된 현실 인식만 심화될 뿐이며 때로는 총기 난사 등 ‘묻지마 폭력’과 같은 테러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들이 매노스피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 서사를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남성성을 제시하고 공동체적 유대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 등이다. 이 시대 남성들이 분노하는 이유와 그 해결책을 고민하는 독자라면 한 번쯤 읽어보기를 권한다.
피해자라 주장할수록 특권?… 어떤 고통에 마음 써야할까■ 가해자는 모두 피해자라 말한다릴리 출리아라키 지음│은행나무
피해자와 피해자성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에도 여전한 화두다. 그리고 이 책은 여기에서 나아가 피해자의 지위를 ‘특권’으로 사용하는 ‘무기화’ 현상을 짚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언뜻 시민의 책무처럼 느껴진다. 누구의 주장이든 ‘나는 억울하고 고통스럽다’라는 개인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것이 원론적으로 윤리적일 수 있을까. 저자는 이처럼 개인의 상처와 인권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일수록 피해자는 공감과 연민, 정당성과 발언권을 부여받기에 ‘무기’로 남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피해자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 요즘, 이 딜레마는 더욱 깊어진다. 복잡해진 관계와 발달한 플랫폼,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우리는 모두가 고통을 호소하는 “고통의 민주주의”를 살아가고 있다. 모든 고통에 “의무적인 존중”을 보내기보다는 “어째서 이 고난의 주장에 마음을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라는 조언은 감정자본주의 사회에 우리가 저항할 수 있는 가장 강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신재우·인지현·김유진 기자
인공지능(AI)이 일상의 문턱을 넘은 한 해였다. 창작을 넘어 출판의 영역까지 AI가 넘보는 시대에, 책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올 한 해 북리뷰 지면을 통해 소개된 책들 가운데 북리뷰팀 기자들이 엄선한 10권의 책은 그 질문에 대한 여러 갈래의 응답이다. 알파고 이후 바둑계의 변화를 짚어내며 인류의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책부터, AI는 미처 시도할 수 없는 방식으로 1980년대 ‘극장도시’서울을 읽어 모바일릴게임 낸 사회학서, 미술계 내부로 잠입한 르포르타주, 경험이 소거되는 시대의 감각을 복원하려는 인문서까지. 효율과 계산으로는 가닿을 수 없는 기억과 감정, 권력과 언어의 문제가 책에서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결국 문학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듯, 올해 가장 눈에 띈 한국문학도 포함됐다. 변화의 속도 앞에서 잠시 멈춰 ‘지금, 여기’를 사유하기 위한 좌표이자, 바다이야기고래출현 다가올 다음 국면을 준비하게 하는 사유의 출발점이 될 ‘올해의 책’을 소개한다.
자극 기억해 더 나은 선택… 식물도 ‘지능’ 가진 존재다■ 빛을 먹는 존재들조이 슐랭거 지음│생각의힘
‘식물지능(Plant Intelligent)’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책. 책은 뇌가 없는 황금성릴게임 식물에도 지능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다고 주장한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식물은 감각도 판단 능력도 없는 존재로 여겨졌다. 1880년 찰스 다윈은 식물의 어린뿌리 말단이 “하등 동물의 뇌처럼 작동한다”는 ‘뿌리-뇌’ 가설을 제시했지만 학계의 맹렬한 비판에 부딪혔다. 그러나 이후 생리학·신경생물학·분자생물학의 발전으로 과거 당연하게 여기던 명제가 흔들리기 게임몰릴게임 시작했다. 1970년대 들어 식물이 뿌리로 수분을 ‘탐지’하고 잎으로 빛의 각도와 세기를 ‘계산’하며, 자극의 빈도를 ‘기억’하고 이웃 식물의 화학 신호를 ‘해석’한다는 연구들이 등장한 것.
예를 들어 식물에는 인간의 신경계와 유사한 이온 통로와 신경전달물질이 있다. 이들은 자극 부위에서 몸 전체로 전기신호를 보내고 면역체계를 활성화하는 릴게임가입머니 역할을 한다. 책에는 식물이 기억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도 등장한다. 나사 포이소니아나는 수분 매개자가 찾아오는 빈도를 기억하고, 다시 나타날 때를 예측해 꽃가루를 내놓는다. 식물이 자신이 감각한 바를 바탕으로 더 나은 것을 선택한다는 의미다.
예술 둘러싼 허세와 욕망… ‘현실적인’ 미술계 입문서■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비앙카 보스커 지음│알에이치코리아
저널리스트 작가의 책에는 일종의 신뢰가 생긴다. 직업적 호기심을 바탕으로 누구보다 치열하게 현장 깊숙이 들어가 독자의 시야를 넓혀주기 때문이다. 올해 다양한 저널리스트의 책이 출간됐지만 미국 문화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뉴욕 예술계에 직접 몸을 던져 쓴 이 책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브루클린의 작은 갤러리 말단 직원으로 시작해 신진 예술가의 작업 조수까지 예술계의 가장 낮은 층위에서 가장 화려한 무대까지 가로지른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예술을 둘러싼 돈과 권력, 허세와 욕망이다. 이 책은 예술을 신비화하기보다, 예술이 어떻게 유통되고 소비되는지를 솔직하게 보여준다.
동시에 저자는 냉소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가 만난 예술가들과 내부자들의 태도는 ‘왜 예술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예술을 사랑하지만 미술계의 언어가 낯설었던 독자에게, 이 책은 가장 현실적인 입문서다. 저자가 조수로 들어간 예술가가 최근 국내에서 첫 개인전을 연 줄리 커티스라는 점이 재미를 더한다.
88 올림픽은 ‘연출된 사건’… 서울은 어떤 가면 썼었나■ 1988 서울, 극장도시의 탄생박해남 지음│휴머니스트
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는 일, 책의 역할 중 하나다. 1988년 올림픽이 열렸던 서울을 ‘극장도시’로 바라본 이 책이 바로 그렇다. 형제복지원과 장위동 등 다양한 공간을 중심으로 한국사회를 들여다본 사회학자 박해남의 저서로, 특정 사건이 아닌 한 도시의 변화를 통해 시대를 돌아보게 한다.
1980년대 서울은 국제사회에서 지위 상승을 노리던 거대한 무대였다. 이를 위해 박정희 정권에서 전두환 정권으로 이어지며 ‘정비된 도시’와 ‘문화 국민’을 만들기 위한 시도는 멈추지 않았다. 지금의 탑골공원과 종묘광장공원은 부랑자들의 터전이자 성매매 집결지였던 공간을 재정비한 결과다. 현재까지 유지되는 엘리트 체육시스템 역시 이 시기 설계됐다.
이 책의 흥미로운 지점은 올림픽을 국가적 성취가 아니라 ‘연출된 사건’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도시를 하나의 무대로 읽어내는 저자의 시선은 오늘날 재개발과 도시의 브랜드화와 겹쳐진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되묻는 점에서 올해의 책으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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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한국 문학 붐(Boom)’을 상징하는 책이라면 단연 ‘혼모노’를 꼽게 된다. 젊은 독자들의 ‘텍스트힙’ 열기가 성해나와 같은 젊은 작가들의 강렬하고도 예리한 색채에 힘을 더해준 결과다. 교보문고와 예스24가 발표한 2025년 결산 자료에 따르면, ‘혼모노’는 연간 종합 베스트셀러에서 각각 4위와 3위를 차지했다.
‘혼모노’라는 소설집 제목은 ‘진짜’를 뜻하는 일본어 단어, ‘本物(ほんもの)’에서 왔다. 표제작에서 30년 차 박수무당인 ‘문수’는 자신이 신령으로 모시고 있던 ‘장수할멈’이 스무 살 남짓의 ‘신애기’에게 옮겨간 것을 목도한다. 신령 없는 무당이 되어버린 문수는 어떻게든 진짜처럼 보이려 애쓰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주변의 조소다.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겨진 다음에야 비로소 ‘모든 것에서 놓여’ 살을 풀고 명을 빌게 된 문수는 어떤 쪽이 진짜인지, 진짜와 가짜라는 게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이기나 한 건지 독자들에게 묻는다.
책은 문수라는 개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세대 갈등이나 전통과 현대의 대립 등 사회적 쟁점에까지 질문을 던진다.
‘혐오 정치’ 반복되는 세계… 獨 장악한 나치 통해 분석■ 나치 마인드로런스 리스 지음│책과함께
올해 출간된 벽돌책 중에서도 눈길이 가는 책이다. 소수당에 불과했던 나치는 어떻게 독일을 장악했는가. 교양 있는 시민들은 왜 그 선전에 동조했는가. 30여 년간 나치를 집요하게 추적해온 저자는 역사와 권위와 복종, 집단심리와 뇌 연구 등 심리학의 최신 학문 성과를 결합해 나치의 부상과 몰락을 다시 들여다본다.
이 책은 나치의 범죄를 단순한 역사적 사건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음모론 퍼뜨리기, 집단 갈라치기, 청년 타락시키기, 두려움 키우기 등 히틀러와 나치가 결정적 순간마다 사용한 전략 12가지를 통해 민주주의가 내부에서 어떻게 붕괴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을 지금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혐오와 분열을 자산으로 삼는 정치가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유럽의 극우 정당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가자지구의 집단 학살까지. 나치즘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꿔 살아남았다. 과연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 질문이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래 남는다.
‘자연의 법칙’ 통념 뒤집어… 모성애 인간본능에도 의문■ 자연스럽다는 말이수지 지음│사이언스북스
좋은 책의 미덕은 당연하게 받아들인 사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이 그렇다. 저자는 ‘자연스럽다’는 수식어가 가지고 있는 통념을 깨기 위해 그 어떤 단어보다 순수하고 중립적으로 느껴지는 ‘자연’이라는 단어 속에 얼마나 많은 가치 판단이 담겨 있는지 역설한다.
동성애나 피임 등을 반대하는 근거는 주로 ‘자연의 법칙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 비롯된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 기술로 많은 한계를 극복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통용되는 논리다. 그러나 저자는 동성애 성향을 보이는 수많은 곤충들과 자연에서 흔히 벌어지는 영아 살해 등의 사례를 통해 이를 반박한다. 나아가 ‘인공’적인 백신 등 여러 생존 수단이야말로 인간다운 자연임을 논증한다.
그런가 하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본능으로 여겨졌던 모성애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인류의 출산율이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모성보다는 협동 육아 덕분이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다소 뻔한 말이 돼 버렸지만 여성성과 남성성 역시 생물학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 결국 우리가 바라본 자연은 사회적·문화적 산물이었다. 책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자연의 비밀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알파고가 부른 바둑계 변화… AI 앞 예술·스포츠에 경고■ 먼저 온 미래장강명 지음│동아시아
“나는 바둑계에 미래가 먼저 왔다고 생각한다.”
2016년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와 프로 기사 이세돌 간의 대국은 바둑계를 한순간에 뒤바꿔버렸다. 이세돌 9단이 1승 4패로 AI에 무너지는 걸 지켜본 바둑계는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뒤로한 채, AI에 다시 바둑을 배워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피도 눈물도 없는 AI 앞에 기사의 ‘기풍’이라는 말은 사라진 지 오래고, AI의 교육을 받은 기사들이 세계대회를 석권하기 시작했다. 바둑을 공부하는 방법, 바둑을 관전하는 문화, 바둑을 통해 추구하던 가치 등 모든 것이 달라졌다.
저자가 전·현직 프로기사 30명과 바둑 전문가 6명을 인터뷰해 이를 생생하게 그려낸 책은 바둑계 변화 과정을 담은 르포르타주이자, 곧 같은 미래를 맞게 될 다른 예술·스포츠 분야에 대한 경고다. 압도적인 실력의 AI가 일상이 될 때, AI는 전문가의 권위와 자부심을 부수는 것을 넘어 일·예술의 정의와 우리가 추구하던 가치 자체를 재정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인 저자는 소설 쓰는 AI가 매일 위대한 장편을 288편씩 내놓을 때 소설가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해서도 곱씹는다.
‘지루함’마저 소멸된 시대… 무엇을 지켜야 할 것인가■ 경험의 멸종크리스틴 로젠 지음│어크로스
현대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경험의 부재’다. 미국 문화 역사학자인 저자는 기술이 인간의 감각을 확장해온 지난 역사와 달리, 오늘날의 디지털 기술은 오히려 직접 경험을 대체하고 있다고 말한다. 인공지능(AI)과 SNS, 온라인 플랫폼으로 인해 신체성의 의미가 희미해진 지금 이 문제의식은 더욱 절실하다.
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지루함’의 소멸이다. 지루함은 쓸모없는 감정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와 다시 접속하는 통로다. 오래 기다리던 약속의 설렘, 줄을 서서 들어간 공연장의 몰입, 목적 없는 산책에서 떠오르는 공상은 효율로 환산할 수 없는 경험이다.
실제로 신경과학자들은 ‘딴생각’을 인간 고유의 창의성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자기인식, 창의적 숙고, 기억 강화와 미래지향적 사고 같은 것들이 여기서 피어난 가치다. 아날로그에 대한 그리움을 바탕으로 한 필사 열풍이 다시 등장하는 지금, 이 책은 기술 비판을 넘어 ‘무엇을 지켜야 할 것인가’를 묻는 차분한 성찰로 읽힌다.
좌절할 수밖에 없는 이대남… ‘매노스피어’서 벗어나려면■ 젊은 남성은 왜 분노하는가사이먼 제임스 코플런드 지음│바다출판사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화두에 오른 ‘이대남’들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을 내놓은 책이다. 이들은 주로 극우로 호명되며, 좌절감과 페미니즘에 대한 적대감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나아가 일종의 사회문제로까지 치부되기도 한다.
사회학 연구원인 저자는 분노하는 젊은 남성들이 모이는 온라인 공간을 ‘매노스피어’(Manosphere·남성계)라고 지칭하고, 이들의 탄생 배경을 신자유주의적 구조와 연관 지어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한다. 전통적 가부장 신화가 무너지고, 경제적 안정성마저 무너진 현실에서 이들의 분노가 여성을 향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이들을 극단으로 몰아 비난하고 방치해서는 아무것도 해결될 수 없다. 왜곡된 현실 인식만 심화될 뿐이며 때로는 총기 난사 등 ‘묻지마 폭력’과 같은 테러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들이 매노스피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 서사를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남성성을 제시하고 공동체적 유대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 등이다. 이 시대 남성들이 분노하는 이유와 그 해결책을 고민하는 독자라면 한 번쯤 읽어보기를 권한다.
피해자라 주장할수록 특권?… 어떤 고통에 마음 써야할까■ 가해자는 모두 피해자라 말한다릴리 출리아라키 지음│은행나무
피해자와 피해자성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에도 여전한 화두다. 그리고 이 책은 여기에서 나아가 피해자의 지위를 ‘특권’으로 사용하는 ‘무기화’ 현상을 짚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언뜻 시민의 책무처럼 느껴진다. 누구의 주장이든 ‘나는 억울하고 고통스럽다’라는 개인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것이 원론적으로 윤리적일 수 있을까. 저자는 이처럼 개인의 상처와 인권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일수록 피해자는 공감과 연민, 정당성과 발언권을 부여받기에 ‘무기’로 남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피해자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 요즘, 이 딜레마는 더욱 깊어진다. 복잡해진 관계와 발달한 플랫폼,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우리는 모두가 고통을 호소하는 “고통의 민주주의”를 살아가고 있다. 모든 고통에 “의무적인 존중”을 보내기보다는 “어째서 이 고난의 주장에 마음을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라는 조언은 감정자본주의 사회에 우리가 저항할 수 있는 가장 강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신재우·인지현·김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