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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없었다. 세미 끝나기가 장구는 안 어제100년 전, 신문에는 해외에 유학하는 신여성에 관한 기사가 연이어 계속됐다. 1925년 5월 27일 조선일보에 조선 최초의 여성 비행사를 소개하는 기사가 나온다.“조선에 처음인 여류 비행사 권(權) 양은 금년에 중국 운남(雲南) 육군항공학교를 졸업하고 방금 그 학교에서 비행기를 연습하는 중이다. 그의 고향은 평양이고 일찍이 군자금 모집 사건으로 1년 반 동안이나 자유없는 붉은 옷 생활을 할 때에도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그날그날을 보냈을 뿐 아니라, 정처 없이 쫓겨 다닐 때에도 오히려 태연한 심사로 지낸 것이다. 1920년 10월에 그를 포박하려고 그의 뒤를 밟던 어떤 형사가 달려옴을 보고 2길이나 넘는 담을 뛰어넘어 그 길로 진남포로 달아나서 목선(木船)을 타고 상해로 들어간 것이다. life time value 적수공권(赤手空拳·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음)으로 중국으로 뛰어들어가 여자의 몸으로서 한 푼의 학자(學資)를 도와주는 사람 없이 벌써 6년 동안이나 학업을 계속하는 그의 열성과 인내력은 과연 감탄치 않을 수 없다… (중략) …그가 중국으로 들어가서 즉시 항주(杭州) 홍도(弘道)여학교에 입학하여 또한 우량한 성적으로 졸업하였는 바, 성적이 너무 양호하기 때문에 nice신용평가정보 어떠한 대학에서든지 능히 무시험으로 입학할 수 있었으나 상해 자동차학교에 입학하여 하늘에서 날기 전에 땅에서 달아나는 공부를 하였다. 중국 남자들 틈에서 창해일속(滄海一粟·넓은 바다 가운데 한 알의 좁쌀 즉, 보잘것없는 것을 말함)으로 홀로 그 속에 섞여 공부하는 그의 마음이 얼마나 적막하고 쓸쓸하랴마는… (중략) …그가 고국에 있는 어떤 친구에게 보낸 국민은행 대학생 대출 편지의 일절(一節)을 보면, ‘사랑하는 벗아! 나는 오늘 50리밖에 비행기를 연습하러 나갔다가 배가 고파서 돌아올 수가 없었다. 비행기 타고 돌아올 수 없었고 걸어서 돌아올 수 없었다. 누가 나의 이런 답답한 사정을 알아주랴? 체험해 보지 못한 너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으리라마는, 성공을 기대하고 밟는 길이니 모든 것을 오히려 기쁨으로 생각한다’ 하였다. 아 하나캐피탈금리 ! 고르지 못한 이 세상에 한낱 성공을 희망하고 고생을 낙으로 아는 권기옥 양, 그의 앞길이 있어지이다.”
그에 대한 기사는 1982년 1월 20일 동아일보에서 다시 볼 수 있다. “나라를 위해서 할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던 중, 1923년 중국군 소속 운남 항공학교를 찾아가 당계요(唐繼堯) 장군의 후원으로 입학 허가를 얻고 무사히 교육 과 새마을금고중앙회 연봉 정을 마쳐 1925년 봄 한국인 최초의 여류 비행사가 될 수 있었다. 그 후 중국 서북군(西北軍)에 배속돼 30년대까지 전투비행사로 일했다.” 6년 후 1988년 4월 21일 각 일간지에 그에 대한 부고가 실린다. “1988년 4월 19일 오후 2시 25분 서울 강동구 둔촌동 한국보훈병원에서 노환(老患)으로 별세했다.”
‘일본으로 폭탄을 안고 날아가 나라를 되찾겠다’는 뜻을 품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 권기옥은 독립운동가로서 큰 발자취를 남겼다. 1919년 숭의여학교 비밀결사대인 송죽회(松竹會) 활동을 시작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일본 경찰에 쫓기던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해 항일 활동을 펼쳤다. 광복 이후 귀국해 국회 국방위원회 전문 위원으로서 우리나라 공군 창설에 기여했으며,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19세기발전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