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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진도군 팽목항을 찾은 추모객이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설치한 타일 공예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진도=하성민 기자 hsm@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맞은 16일, 광주·전남 곳곳에 열린 세월호 참사 추모 공간에는 12년이 지나도록 참사의 아픔을 잊지 않은 이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방파제를 따라 설치된 ‘성역 없는 진상규명’, ‘잊지 않았습니다’ 등 글이 적힌 깃발이 해지고 수천개의 노란 리본도 빛이 바랬지만, 추모객들이 안고 있는 기억과 슬픔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 모바일바다이야기 슬픔에 잠긴 진도항=이날 진도 진도항(구 팽목항)에는 60여명의 추모객들이 모여들어 슬픔을 나눴다. 방파제를 따라 걸으며 눈물을 훔치는 이도, 방파제 맞은편에 걸린 ‘잊지 않겠다’는 등 메시지가 담긴 현수막을 한참을 바라보는 이도, 속상한 듯 바다만 바라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는 추모객도 모두 한 마음으로 참사 희생자들의 아픔을 공유하고 있었다.
바다이야기오리지널진도항 방파제에 전시된 세월호 기억의 벽(타일 공예)에 세겨진 ‘기억할게’, ‘하늘에서 잘 살아’, ‘잊지 않을게’ 등의 문구를 바라보며 말없이 눈물을 훔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추모객 이영단(여·60)씨는 “햇빛에 비친 희생자 이름의 그림자를 보니 다시금 많은 생명이 떠났다는 게 실감난다”며 “12년이면 아이들이 다 성장했을 시 바다이야기부활 간인데 그렇게 떠났다고 생각하면 더 마음이 아프다”고 눈물을 흘렸다.
이명희(여·65)씨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그 마음을 생각하면 너무 힘들다”며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고 싶어 찾았다”고 말했다.
팽목기억관에 차려진 분향소에서도 슬픔을 참는 탄식소리가 이어졌다. 추모객들은 하나 둘씩 분향소를 들러 향을 피우고 릴박스 추모 메시지를 담은 노란 리본을 곳곳에 걸어두는 등 추모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맞은편의 희생자 유해 임시안치소였던 팽목성당에서도 애달픈 추모 기도가 이어지는 등 진도항 일대가 온통 슬픔에 잠겨 있었다.
분향소를 찾은 김인재(32)씨는 “대학교 새내기 때 MT 간다고 들떠 있다가 세월호 참사 뉴스를 보고 크게 충격 받았다”며 “그 이후로 사이다쿨바다이야기게임 세월호 참사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울컥하고 감정이 생생해서 거의 매년 팽목항을 찾아 한번 둘러보고 간다”고 밝혔다.
팽목성당에서 추모를 하던 김옥선(여·67·전남 진도)씨는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처음 TV로 사고를 접했을 때의 충격과 슬픔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며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유가족들의 아픔은 여전할 것이다. 우리가 계속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12주기인 16일 전남 목포신항에서 열린 ‘세월호 목포 기억식’에서 참석자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대형 현수막 너머로 헌화하고 있다. /목포=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선체만 봐도 눈물이=같은 날 오후 3시 ‘세월호 참사 12주기 목포기억식’이 열린 목포시 달동 목포신항 세월호 선체 앞에서도 추모 물결이 퍼지고 있었다. 추모객들은 바닷바람에 일제히 흔들리는 노란 리본 너머로 묵묵히 선 녹슨 세월호 선체를 바라보며 탄식을 내뱉었다. 거대한 세월호 선체는 선미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이 검붉게 녹슬어 있었고, ‘세월(SEWOL)’이라는 글자마저 희미해진 채 바닷바람을 맞고 있어 쓸쓸함을 더했다.
기억식 현장에는 세대를 넘어선 추모가 이어졌다. 수업을 마친 뒤 점심도 거른 채 현장을 찾은 만학도부터 자녀의 손을 잡고 온 시민들까지, 각자의 이유로 이곳을 찾았다.
두 자녀와 꽃을 들고 방문한 김민들레(여·43)씨는 “아이들과 함께 매년 찾는다”며 “현장을 직접 보고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12년 전에는 한손에 6살이던 큰 딸 손을 잡고 2살이던 아들을 업고 추모식을 찾았었는데 벌써 딸이 18살이 됐다”며 “어린 아이들이 어른들의 욕심으로 하늘의 별이 됐다는 생각이 들어 올해는 아이들 학교 수업도 빼고 이곳을 찾았다”고 눈물을 보였다.
영국 출신 영화감독 제이슨 버니(55)씨도 기억식을 찾았다. 버니 감독은 지난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계기로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바 있다.
버니 감독은 “2014년 참사 직후부터 영국에서 친구들과 함께 매달 희생자들을 추모해왔다”며 “2017년 처음 목포를 찾아 세월호를 직접 본 순간 형용하기 어려운 슬픔을 느꼈다”고 말했다.
기억식에 참석한 이들은 그 선체를 바라보며 12년 전 오늘, 수학여행길에 올랐던 학생들이 타고 있었을 배의 모습을 떠올리는 듯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일부 참석자들은 말없이 눈시울을 붉혔고, 고개를 떨군 채 자리를 지키기도 했다.
세월호 희생자 최수희 양의 아버지 최준헌(64) 씨는 딸을 잃은 아픔 속에 12년 만에 처음으로 추모식에 참석했다. 최씨는 “눈을 감으면 딸이 ‘아빠’ 하며 품에 안길 것만 같은데 눈을 뜨면 차가운 공기만 가득하다”며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줄 걸 그랬다”고 울먹였다.
김빛나라 양의 아버지 김병권 씨는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해가 갈수록 그리움은 더 짙어지는 것 같다”며 “딸의 커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기억 속에는 여전히 고등학생으로 남아 있는 게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광주시 동구 5·18민주광장에 마련된 광주시민분향소에도 추모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시민들은 잠시 바쁜 발걸음을 멈춰 세워 참사로 희생된 이들을 향해 차례로 묵념하며 애도를 표했다.
시민들은 인근에 마련된 부스에서 ‘시민의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를 기원한다’, ‘기억하겠다’, ‘행동하겠다’ 등 각자의 다짐을 담은 쪽지를 힘주어 써 내려갔다.
곽경임(여·66)씨는 “12년이 지나도 그날의 아픔과 충격은 잊히지 않는다. 어린 학생들의 사진을 하나하나 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며 “어른으로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할 뿐이고, 여전히 안전사회는 요원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눈가를 훔쳤다.
성윤서(여·26)씨도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이태원 참사 등 대형 참사가 이어지며 많은 인명이 희생됐다”며 “그럼에도 유족들이 바라는 진상규명과 후속 조치, 재발 방지 대책 등은 여전히 미흡하다.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끝까지 기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목포=서민경·김혜림·윤주은 기자 minky@wangju.co.kr
/진도=하성민·박준원 기자 hsm@kwangju.co.kr
/윤준명 기자 yoon@kwangju.co.kr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맞은 16일, 광주·전남 곳곳에 열린 세월호 참사 추모 공간에는 12년이 지나도록 참사의 아픔을 잊지 않은 이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방파제를 따라 설치된 ‘성역 없는 진상규명’, ‘잊지 않았습니다’ 등 글이 적힌 깃발이 해지고 수천개의 노란 리본도 빛이 바랬지만, 추모객들이 안고 있는 기억과 슬픔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 모바일바다이야기 슬픔에 잠긴 진도항=이날 진도 진도항(구 팽목항)에는 60여명의 추모객들이 모여들어 슬픔을 나눴다. 방파제를 따라 걸으며 눈물을 훔치는 이도, 방파제 맞은편에 걸린 ‘잊지 않겠다’는 등 메시지가 담긴 현수막을 한참을 바라보는 이도, 속상한 듯 바다만 바라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는 추모객도 모두 한 마음으로 참사 희생자들의 아픔을 공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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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객 이영단(여·60)씨는 “햇빛에 비친 희생자 이름의 그림자를 보니 다시금 많은 생명이 떠났다는 게 실감난다”며 “12년이면 아이들이 다 성장했을 시 바다이야기부활 간인데 그렇게 떠났다고 생각하면 더 마음이 아프다”고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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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2주기인 16일 전남 목포신항에서 열린 ‘세월호 목포 기억식’에서 참석자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대형 현수막 너머로 헌화하고 있다. /목포=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선체만 봐도 눈물이=같은 날 오후 3시 ‘세월호 참사 12주기 목포기억식’이 열린 목포시 달동 목포신항 세월호 선체 앞에서도 추모 물결이 퍼지고 있었다. 추모객들은 바닷바람에 일제히 흔들리는 노란 리본 너머로 묵묵히 선 녹슨 세월호 선체를 바라보며 탄식을 내뱉었다. 거대한 세월호 선체는 선미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이 검붉게 녹슬어 있었고, ‘세월(SEWOL)’이라는 글자마저 희미해진 채 바닷바람을 맞고 있어 쓸쓸함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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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은 인근에 마련된 부스에서 ‘시민의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를 기원한다’, ‘기억하겠다’, ‘행동하겠다’ 등 각자의 다짐을 담은 쪽지를 힘주어 써 내려갔다.
곽경임(여·66)씨는 “12년이 지나도 그날의 아픔과 충격은 잊히지 않는다. 어린 학생들의 사진을 하나하나 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며 “어른으로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할 뿐이고, 여전히 안전사회는 요원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눈가를 훔쳤다.
성윤서(여·26)씨도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이태원 참사 등 대형 참사가 이어지며 많은 인명이 희생됐다”며 “그럼에도 유족들이 바라는 진상규명과 후속 조치, 재발 방지 대책 등은 여전히 미흡하다.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끝까지 기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목포=서민경·김혜림·윤주은 기자 minky@wangju.co.kr
/진도=하성민·박준원 기자 hsm@kwangju.co.kr
/윤준명 기자 yoon@kwangju.co.kr